온-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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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穩 평온하다 평안하다 곡식을 거둬들이다 온 천지 제 자리에 있는 것이 터무니의 으뜸인데 얼마나 많은 것이 제자리를 잃고 있는가. 만물의 영장임을 외치는 인간이 하는 일이 고작 부수고 뒤집고 쌓고 만들고 섞어놓고는 ‘발전을 위하여’를 외치는 일은 애당초 터무니없는 일이다. 온전한 삶을 위해 행동할 시간 사람이 숨 쉴 수 있는 맑은 공기와 물고기가 헤엄칠 수 있는 투명한 물과 새들이 날 수 있는 텅 빈 창공이 그리운 날 그마저 그리운 날은 끝이 되어 가는가 기후위기는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 산업문명이 부자의 길이란 아지랑
待-대-기다림-대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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待  대 기다림    대비함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전례를 준비하면서 스타시오Stasio라 부르는 몸가짐을 복도에서 취했다. 그들의 서있음은 기다림인가? 대비함인가? ‘이미’와 ‘아직’의 낮고 높은 벼랑길에서 우리는 여전히 서성이고 있다. 우물쭈물하는 동안, 두리번거리고 있는 동안, 물인 줄 알고 불 속에 있는 동안. 여보, 당신 언제 오시렵니까 국민이 주인인 세상 더불어 도우며 사는 세상 앞사람이 뒷사람 손잡아 주는 세상 서로를 주인공으로 바라보는 세상 머문 자리의 일상이 행복한 세상 여보, 당신 어서 오소서 김유철 | 한국작가회의
備-비-준비-갖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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備  비 준비 갖추다 책부터 챙기는 사람도 있고, 먹을 것이나 입을 것부터 챙기는 사람도 있다. 길 떠날 때면 여행가방에 들어간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이 되었든 준비가 길의 도착 모습을 좌우하기도 한다. 길에 있는 자여. 여행가방을 열어보라. 무엇이 들었는지. 개봉박두. 원願과 행行 먼 길이다 바탕을 만들 원願을 세워라 길에서의 행行으로 순간을 채워라 원願과 행行으로 한 몸을 이루어 지금면목으로 본래면목을 찾으시라
無-무-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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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  무 없다 없음에서 시작하는 있음. 무용지물에서 비롯되는 유용지물. 숱하게 반복되고 거듭되는 이치를 모른 척 하거나 스리슬쩍 지나치더라도 어김없이 발 앞에 펼쳐지는 일이 있다. 누군가-형상 없는 듯해도-보고 있다. 알고 있다. 그것이 세상이리니. 나無 나무는 변덕이 없다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더우나 추우나 늠름하거나 초라한 대로 꼿꼿하거나 휘거나 갈라진 대로 온갖 풍상 속에서 온갖 것들의 지나침을 바라보면서    멀뚱한 물건    영악한 물건    고집스러운 물건    순둥순둥한 물건    오리무중한 물건    안타까운 물건
빈-무덤의-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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此 차 이곳 이것 찾고 또 뒤져도 없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이미 밖에 나와 있으니 안에는 없는 것이다. 손바닥이든, 발아래이든, 멀리 노을 속이든 온 천지 존재하는 것을 새삼 찾지 말고 고스란히 살아낼 수밖에 없을 일이다. 그러니 먼저 “돌을 치워라”(요한11.39) 빈 무덤의 언어 나뭇가지의 흔들림 샘물의 파장 잎사귀의 물듦 때로는 바람 햇살이거나 안개 이것이란 말인가 반항과 질투의 검은 꽃이 곳곳에서 피는데 빈 무덤의 언어는 고요하다 여기가  그분이 있는 자리라고 공중의 새는 훨훨 자유로이 날고 있다  손가락 움직임과 등 뒤
失-실,-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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失  실,  新 신 김유철 / 시인, 시대와 만난 시인 ‘산이 바다에 떠 있듯이’를 최근 출간했다. 失  실 잃다 지나치다 잘못하다 일 년이 열두 달이니 초하루마다 새로운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열두 번이 된다는 얘기다. 충무공 이순신이 말한 대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고, 저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잃었다면 다시 찾으라. 손가락 나무의 긴 손가락을 보는 순간 섬뜩했다 수많은 세월을 지내온 그가  E.T 닮은 손가락으로 내밀었던 그 많은 신호를 놓쳐버렸다는 것을 아는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餘-여-남다-/-藏-장-감추다-/-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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餘  여 남다 여가 / 말미 / 결국 김유철 / 시인 여지와 여백은 나의 공간이 아니다. 나의 공간을 줄여야 비로소 생기는 여지와 여백은 남의 공간, 너의 공간, 님의 공간이다. 지천이 색인 세상에 색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드러낼 수 없는 물체는 없지만 오직 여지와 여백은 무색 그대로다. 무색여백이 있어 끝내 지복至福이다. 무색여백 천둥이 들리길 바랐을까 새벽 다섯 시 수도원 종소리는 천둥이 아니었다 바라는 대로 안 되어서 세상사-정말-다행이지만 몇 번인가 거듭 거듭 삼라만상 들뜬 가슴께로 울리는 종소리는  여백을 빼꼼히 만들어냈다
田-전---밭,-심다-/-露-로---이슬,-적다,-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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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  전 밭 , 심다 김유철  / 시인 큰불이든 작은 불이든 불은 불이다. 그것이 이글거리든 깜박거리든 불은 불이다. 불은 꺼짐이 없다. 불은 태우고 사르는 신열 그 자체다. 제 몸에서 시작하며 네 몸에 이르기까지 불은 전염이며 감염이며 소통이며 막다른 외마디다. 그 불이 사랑이 될 때 까지. 온통. 불밭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왔다는 예수 삶터는 불밭이다 제자넘들은 그 불을 피하고 제자 아닌 넘들은 그 불을 지르고 제자의 제자넘들은 다시 그 불을 피하고 제자 아닌 넘의 제자 아닌 넘들은 다시 그 불을 지르는 예수는 불이다 불밭이다
思-사---생각-뜻-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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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 사 생각 - 뜻 - 마음 김유철  / 시인   참사 210일을 맞으며 “수색 중단!”을 외치던 그들의 목은 굵었다. 그들이 말하던 “수색 중단!”이라는 말은 그들의 생각으로는 “세월호 사건 종료!”와 같은 뜻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의 마음이 맹골수도였다. 그렇게 우리는 365일을 보내고 1주기를 맞았다. 사월思月이었다 세월, 그 노란바다에서 - 416. 1년. 아직 내 눈에는 배꼬리가 바다에 떠 있다 그 배 안에서 숨소리가 들리고 그 바다는 여전히 몸부림을 친다 데려가라고, 이 아이들 너희가 데려가라고 그 하늘에 별이 박혀있
書-서---문자,-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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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 서 김유철 / 시인 문자 기록하다 검은 먹에서는 냄새가 났다. 꼿꼿이 서서 몸을 사르는 향과는 다른 먹먹한 향이 먹에서 나왔다. 동그랗고 날카로운 붓끝이 움직이면 직선과 곡선이 동시에 그려졌다. 저것은 문자인가, 기호인가, 그림인가. 붓으로 휘감은 먹을 품은 화선지는 그저 먹이 담아진 그대로 일 뿐이었다. 시를 쓴다는 것 과녁 없는 활시위를 당기는 일이다 관중貫中은 애당초 무존재의 존재 한 글자 한 글자 원고지 밖으로 밀어내는 일은 늘 고독하며 아득하다 원고지 위로 겨울 지샌 봄꽃이 핀다 꽃 위에 별이 뜨고 새벽안개가 덮이고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