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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24호【특집】『 대화 = 교황, 세상과 함께 울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 - 공동선 편집부 -
<<대화>>

교황, 세상과 함께 울다 -회칙 ‘찬미받으소서’

박동호 |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조현철 | 신부, 서강대학교 교수, 예수회 소속
김익중 | 동국대학교 의대 교수, 환경운동연합 경주위원장
류상태 | 사회, 종교작가

류상태 : 지난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Si’)를 발표하
고, 전 지구적 차원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생태적 회심을 요청하
셨습니다. 우선 교황께서 말씀하신 회칙에 대해서 박동호 : 신부께서 간략히 정리해주시
죠.
박동호 : 지난 2세기 동안에 인류는 “자연과 가난한 자들을 야만적이며 폭력적으로 착취
했고 남용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것이 회칙의 근본정신입니다. 우선 인간의 능력으
로 과학기술을 급격하게 발전시켰지만 그러나 이런 과학기술의 발전이 지금 인간과 자연
을 함께 살리며 올바른 길을 가지 않기에 이제 가톨릭인을 포함한 많은 선의를 가진 사람
들이 함께 새로운 땅과 지구를, 그리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하십니다. 왜곡된 인간 중심주의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절대주의와 무엇이 옳은가, 그른
가를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는 너그러운 상대주의가 인간의 욕망에 제한을 두지 못하고 
무한정 질주해 왔는데 그것을 먹잇감으로 삼은 경제와 과학기술이 괴물이 되어가는 상황
입니다.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장치가 정치인데 정치가 그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죠. 
그래서 문화적이면서도 시민적인 행동이, 표현으로는 ‘cultural revolution’ 이라는 것을 검
토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교황께서는 종교가 이 상황에서 충분히 기여할 바
가 있어서 이 회칙을 모든 이에게 제안하고 대화를 만들어 가는데 앞장서겠다고 하신 겁
니다.
류상태 : 그런데 언론에서는 회칙을 ‘환경회칙’으로 용어를 제한하여 쓰는데 대해 굉장한 
우려를 표현하셨지요.
박동호 : 교황께서도 문헌에서 지금의 이 상황은 경제, 과학기술, 정치, 사회, 문화, 생활
양식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십니다. 단순하게 한 분야만 떼어
서 접근하는 것은 환원주의로 그것은 오히려 문제를 가리거나 왜곡할 우려가 있기 때문
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사회회칙’이라는 표현도 하셨어요. 새로운 통합적이면서
도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태ecology라고 표현할 수 있죠. 생태론, 생태주의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교황께서는 지식의 파편화라든지 학문영역들의 개
별화가 사실 지난 2세기 동안에 우리에게 안겨준 폐해에 대해서 우려하면서 통합적인, 새
로운 종합이 필요하다고 보니까 환경이라는 요소가 우리에게는 natural environment로 
많이 각인되어 있죠. 그런데 human environment, social environment를 다 포함하는 넓
은 의미로 쓰는 점에서 환경회칙이라고 하게 되면 자연의 환경만을 우리가 생각하니까 회
칙의 비전을 너무 축소시키는 우려가 있죠.
류상태 : 말씀하신 것처럼 지난 2세기 동안 온갖 생태를 파괴하며 점검하지 않은 상태로 
그냥 달려왔는데 이렇게 왜곡된 방향으로 끌고 가는 거대한 힘이 있다고 언급하시는데…
박동호 : 여기서는 주로 과학기술과 경제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탐욕의 세력이 있다고 보
시는 거죠. 정치가 경제에 종속이 되고 경제가 소득, 이익을 얻고자 하는 세력에 종속되
어 버린 겁니다. 교황께서는 탐욕의 세력을 과학기술과 경제의 연합, 그리고 금융세력으
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류상태 : 거대한 힘을 끌어가는 정점으로 과학기술, 경제로 크게 두 방향을 말씀하셨는데 
결국은 과학기술도 끌어가는, 더 앞서고 정점에 있는 세력은 경제로 보시는 것 같은데 혹
시 자본주의를 타깃으로 하신 것은 아닌가요?
박동호 : ‘복음의 기쁨’이라는 교황권고에 보면 Chapter2에서는 주로 지금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와 시장을 우상화하고 절대시하는 경제 이야기가, 그리고 Chapter4
에서는 경제, 특히 금융의 절대자유에 대해 말씀하시고 교회는 이를 극복하는 도전을 해
야 한다고 하신 것으로 봐서는 자본주의 중에서도 최근의 신자본주의를 겨냥하시는 것으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금융이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이 회칙 후반부에서 
보면 금융시장이 실물시장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으로 봐서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신자유
주의 가운데 세계화, 세계화 가운데서도 금융시장의 거대화를 말씀하십니다. 문장 자체
는 사람들이 실물시장을 그다지 열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인데 그 말을 다시 바꾸면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열광하고 있다는 거죠. 금융자본가들이 아마존을 겉으로는 보호하
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속셈은 다르다고 하신다든지, 탄소 배출권의 경우도 기만이라
고 대놓고 단언하시는 것으로 봐서도 금융자본을 겨냥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현철 :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환경회칙으로 의미를 축소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생태
회칙이라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구를 영어로 Our common home이라고 합
니다. 이게 바로 생태라는 얘기지요. 희랍어 oikos가 home에 해당하는 것이고, 흔히 
oikos를 생태라고 번역하죠. 그렇기때문에 생태 그 자체가 사회를 다 포섭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도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이 회칙을 보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고 합니다. 그냥 피상적인 연결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서 연결이라고 보는 것은 존재와 생
명의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말이 16항에도 나오고 몇 번 더 나옵니다. 밀접하게 
서로 존재와 생명에 영향을 주는 식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지반으로 볼 수 있는 것
이죠. 그래서 이분이 integral ecology 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
런데 지난 200년 동안에 우리 모두가 서로서로에게 연결되어있다는 그것을 완전히 끊어내
죠.
그러니까 우리 인간은 자연하고 완전히 별개의 존재, 인간끼리도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
는 존재로 리모델링하는 거죠. 생태적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틀린 것이죠. 그런 근본인식
이 적용되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일차적으로 경쟁을 하죠. 그리고 자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용하느냐는 것이 최우선이 되는 것이죠. 이런 패러다임에서 움직여 온 것
이 쌓이고 쌓여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산업사회를 뒷받침하면서 데카르트 이후에 나온 기계론적 세계관이 이런 것이거든요. 데
카르트를 보면 인간, 생각하는 자 외에는 나머지는 전부 다 사유 객체잖아요. 사유의 주체
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사유 객체는 물질이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하나의 기계로 볼 
수 있는 거죠. 그 기계를 인간 개인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죠.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 
그것이 하나의 기계와 같다고 하는 게 근대 이후의 큰 인식틀이거든요. 그러면 자연 같은 
것은 뭐 거칠게 없죠. 쓰다가 훼손되면 부품이니까 갈아 끼우면 되는 거죠. 사람도 그런 
식으로 인식한다는 거죠.
이 회칙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생태적 세계관을 다시 들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잊혔던 것을 다시 불러냈고 사람들에게 다시 환기시키며 어떻게 살 것인
가? 라는 문제를 제기하신 것입니다.
김익중 : 지난 200년 동안 과학기술이 굉장한 발전을 이뤘고 정치,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의사결정권을 왕을 비롯한 소수 귀족들에게 집중되어 있다가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하면
서 정부가 권력을 행사하다 지금 현재는 돈이 지배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지금도 국경이란 게 있지
만 지금은 다 허물어진 상태여서 미국에 있는 사람이 저 멀리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을 수
탈할 수도, 도울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거죠. 세계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된 상황으로 돈
의 힘이 아무런 거침없이 전 지구를 지배하는 그런 상황이죠.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혜택
을 받는 그런 세상이 만들어졌다면, 그리고 자연을 좀 덜 훼손하는 그런 질서를 만들었다
면 모르겠지만 지금 지구는 그 반대로 가고 있고 이런 상황을 교황께서 지적하신 건데 돈
은 규제받지 않는 권력인거죠. 적어도 왕이나 정부일 경우에는 규제가 제도적으로 쉬웠었
는데 지금은 형태가 보이지 않는 돈이라는 존재거든요. 요즘은 종이로 되어있지도 않고 
정말 아무 제한 없이 전 지구를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질서를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이 돈을 얼마만큼 평등하게 분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돈의 힘을 
규제하는, 우리 인류들이 다 같이 동의할 수 있는 국제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지는 못했
기 때문에 돈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많은 이들이 뺏기는 상황이 진행된 거고요. 이런 과정
에서 굉장히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수탈의 기술도 굉장히 효율적이게 된 거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을 수탈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굉장히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는데 지난 200년 동안 정말 우리 인간이 만들어보지 
못한, 만나보지도 못한 그런 새로운 물질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특히 화학분야에서 굉장
히 많은 새로운 물질들이 편리성, 효용성이란 명목 하에 개발되고 정부가 그것을 지원하
고 새로운 물질들이 처음에는 좋은 효과들만 기대하지만 나쁜 효과들은 나중에 드러나
죠. 굉장히 바보 같은 짓거리를 합니다. 좋은 효과만 확인되면 그냥 사용을 허락합니다. 
그걸 쓰다보면 1년, 2년 혹은 10년 지난 다음에 이것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자연이 
파괴되고 그다음에 금지하는 과정을 계속 겪은 거죠. 좀 더 안전하려면 새로운 물질의 안
정성, 인체에 대한 안전성과 자연에 대한 안전성을 검증한 후에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좋
은데 따라갈 수가 없는 겁니다.
물리학적으로도 핵에너지를 쓰기 시작하면서 지구상에 없던 새로운 원자가 탄생합니다. 
후쿠시마 이후에 우리는 세슘 134 ,137 이런 말들을 듣게 되는데 그건 지구상에 원래 없
는 물건이 있습니다.
거대한 우라늄이라고 하는 원자를 중성자를 가지고 깰 때 나오는 파편들인데 이 파편이 
천 가지 정도 됩니다. 그중에서 구백 가지는 원래 지구상에 없던 그런 새로운 원자입니
다. 이것이 자연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저 큰 에너지를 
가지고 빵 터져서 수십만 명을 죽일 수 있다, 그 다음에 천천히 핵반응을 일으키면 열이 
나서 이걸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 이런 효과만 보고 개발했는데 부정적인 효과는 수십 
년 후에 알게 된 겁니다. 핵이 암을 일으킨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다, 다양한 질병을 일으
킨다는 등을 아는 것은 수십 년 후의 일입니다. 이미 핵을 규제해야 되는데 핵을 가지고 
돈을 벌고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파워가 아주 세졌어요. 정치나 경제적으로는 이들을 
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겁니다.
류상태 :과학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는 거의 묻지 않
죠. 경제도 그렇고요. 그러면 ‘해도 되는 거야?’ 라고 묻는 집단들이 있어야 된다고 보는
데 그중에 큰 그룹이 종교인 것 같고 그런 점에서 교황께서 이렇게 나서신게 참 대단한 행
보를 하셨다는 생각도 들고 겁도 굉장히 납니다. 그리고 또 한편은 교육계, 삶을 염려하
는 시민단체 등에서 ‘해도 되는 거야?’ 라고 물으면서 견제하고 붙들고 얘기해야 될 것 같
은데 그걸 잘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익중 : 저는 과학과 경제를 같은 수준으로 놓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
에 비춰보면 과학은 철저히 돈에 종속됩니다. 과학을 연구함에는 인력이 필요하고 재료
가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개인들의 의도대로 필요한 연구를 
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과학의 발달은 돈에 의해서 지배
를 받아요. 돈을 중개하는 곳이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죠. 돈의 향배에 의해서 과학자들이 
어느 연구를 할지를 결정해요. 순수한 과학을 위해서라도 과학자들이 어느 분야를 할지 
결정하고 거기에 적절하게 정부가 돈을 분배해주는 그런 방식이 돼야 되는데 그렇지 않습
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간에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이 연구가 필요하다, 이 연구에 할 
사람’ 그러면 과학자들이 거기에 줄을 서는 겁니다. 우리 정부가 이쪽에 돈을 주겠다고 정
책을 바뀌면 과학자들은 연구주제를 반드시 바꿉니다. 그걸 잘 바꾸는 사람은 살아남습니
다. 안 바꾸고 자기가 원래 흥미 있던 일을 하는 사람은 결국 살아남지를 못하게 되는 거
죠. 그러면 이 방향에 돈을 주겠다는 것은 누가 결정하냐, 정부가 결정하는 거냐, 아닙니
다. 그 뒤에 돈이 결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돈과 과학은 주종관계라고 보고 있습니
다. 
조현철 :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자본이 국경을 초월하고 그러면서 국경이 없어
졌다는 주장이 있고, 자본이 개별 정부를, 국가를 뛰어넘었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
죠. 우리나라도 자본이 움직이죠. 기술이나 과학이 뭘 할 것인가는 자본이 선택하죠. 그런
데 여전히 개별국가는 건재하고 국가는 여전히 힘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5년짜
리 정부라도 힘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재벌들이 줄을 서잖아요. 그리고 공격할 수 있죠. 
우리나라가 국제자본에는 취약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보면 정부가 힘이 있
는 거죠. 그런데 자본과 정부의 이해와 요구가 맞아 떨어지기에 같이 가는 것이고, 만약
에 아니라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정부가 통제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책임이 굉장히 중요한데 회칙에는 “현재 존재하는 현존하는 질서, 그러니까 정치 
질서나 이런 것들은 힘이 없다, 아니면 이미 그런 의지가 없다.”라고 표현하며 그러니까 
선의의 개인이나 아주 다양한 시민 그룹들에게 기대를 두고 계신 거죠. 어쨌든 선거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시민대중들의 요구를 무시 못 하죠. 이런 것들이 정치 제도에 변화를 가
져 오면 변화가 일어나죠. 같은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하더라도 독일과 미국은 많이 다
르잖아요.
김익중 : 최근 우리나라에 두 가지 사건이 있었죠. 첫 번째는 메르스사태 때 일입니다. 삼
성병원이라고 하는 재벌 병원이죠.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유명한 병원인데 이 병원에 국가
권력이 못 들어갔습니다. 이 병원의 역학조사를 정부의 역학조사단이 들어가서 해야 되는
데 삼성병원의 거부로 못했습니다. 하지만 삼성병원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합니다. 삼성병
원의 역학조사를 자신들이 하겠다고 했는데 거기서 굉장히 큰 실수를 합니다. 환자를 이
송해주는 대원들을 역학조사 대상에서 뺀 것이고 대원 중 한 사람이 환자가 되어버렸죠. 
그러니 더 많은 환자들이 발생한 거죠. 이렇게 되어 버린 후에야 그제서야 정부가 역학조
사단을 집어넣게 된 거죠. 이 경우가 정부가 돈을 지배하고 있지 못하다는 단적인 예가 됩
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핵 산업계가 실제로 정권을 갖고 있지 못하지만 돈을 가지고 정
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핵산업정책을 수십 년간 끌어 왔던 
것인데 흔한 예는 아니지만 삼척 시민들이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했던 시장을 선거에서 떨
어트립니다. 그리고 새 시장을 뽑았는데 새 시장은 딱 한 가지만 공약했습니다. 원전 신청
을 철회하겠다고 공약하고 압도적으로 당선이 되어버리죠. 이후 정부는 삼척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어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와 그 뒤에 있는 돈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돈의 눈치를 보는 정부를 앞잡이라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돈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죠. 민주주의
를 제대로 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탈핵에서도 가장 핵심입니다.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
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나라인데, 권력을 갖고 있는 국민이 핵이 나에
게 손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탈핵으로 가는 겁니다.
류상태 : 회칙에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그리고 오늘날 사회
를 다스리는 이미 확립된 권력 구조의 변화를 요청합니다.” 완전히 바꾸자는 거죠. 표현
은 정중하지만 아주 강경하게 초강대국을 겨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세계화를 추진하는 진
영 특히 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선전포고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결국 미국의 우경화된 
정치세력을 뒤에서 밀어주는 세력이 네오콘NEO conservatives인데 이 사람들은 개신교 
근본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아주 보수적인 신앙인들이 거든요. 그들은 교황이 되실 때부
터 계속 공산주의자라고 비난을 퍼 부었습니다.
박동호 :미국에서 여론조사를 했는데 교황께서 처음에 즉위했을 때와 그리고 ‘복음의 기
쁨’이란 권고가 나오고 회칙 나온 다음에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 교황에 대한 호감도가 점
차 떨어지고 오히려 거부감을 가진 분들이 더 많다고 발표했답니다. 교황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도, ‘찬미받으소서’에서도 신앙인이라면 평화를 당연히 지향하는 것이고, 그러
면 신앙인들이 먼저 대화할 수가 있다고 하십니다. 원론적으로 신앙이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세상에 구축하는데 뜻을 모으는 것은 당연하고 이의를 달 수는 없겠지요. 다만 방
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회칙을 발표한 후 그날 오후 미국 공화당에서 처
음 나온 입장은 국제정치적으로 상당히 민감한 부분에 끼어들었다고 표현한 거 아닙니
까? 교황이 왜 이 문제에 나서느냐고 입장을 표현한 거죠. 하지만 교황께선 양심이고 가야
될 길이니 자신의 신념도 솔직하고 분명하게 밝히면서 대화를 하자고 하는 겁니다.
류상태 : 이런 점에서 ‘교황께서 존경을 받으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진정한 신
앙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객관적으로 이것, 저것 점검하고 분석하고 그래서 이
런 위험성이 있으니까, 이렇게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당신이 믿는 하느님 앞에 이것이 
과연 옳은가 생각해서 옳으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믿고 행진하는 것이 훌륭한 신앙의 모
습이고, 저도 희망을 갖게 됩니다.
박동호 : 어쩌면 한국천주교 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수용되지 않을 가능성
이 높아 보입니다. 첫째로 아무리 제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도 아주 오랫동안 50년
~60년 동안 신앙생활을 개인주의화시키고 사적 영역으로만 제한시키는데 익숙해졌기 때
문에 그리고 새로 양성된 신자들도 그렇게 훈련을 받고 하고 있기 때문이죠. 물론 형식적
인 틀로는 교회라는 제도에서 같이 움직이는 것 같지만 마음이나 의식이나 행위는 철저하
게 개인주의적입니다. 그다음에 두 번째로는 신앙이라든가 종교라는 신념하고 생활이나 
사회를 철저하게 분리시키는데 아주 뼛속까지 익숙하기 때문에 아예 그냥 무시 아니면 
뭐 저기 변방에 북소리 정도로 성직자나 수도자를 포함해서 그 정도로 받아들일 가능성
이 굉장히 높다고 봅니다.
조현철 :회칙 초반부에 교황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
명히 얘기를 합니다. 창조의 복음The gospel of creation이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
유가 “이 생태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상의 문제들은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다, 그
렇기 때문에 단순히 과학기술로, 경제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 인류의 모든 유산들을 꺼
내 이야기할 수 있고 그중에 아주 중요한 것 하나가 종교적인 유산이다.” 그러니 우리 가
톨릭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모든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류상태 : 가톨릭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 교우들 중에서 반反생태적인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에서 힘겹게 싸우면 교회 가서는 위로 받고 안
식을 누리고 싶은데 교회까지도 당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뭐해라 그러면 너무 힘들어 할 
수도 있는데 제가 볼 때는 이 ‘회칙’에는 너무나 구체적으로 숙제를 주신 것 같습니다. 교
우들을 따끔하게 야단도 치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표현을 쓰십니다. ‘회피주의’라는 
단어를 쓰시면서 교회는 사회 안에서 좋은 구조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고 실천을 해야 
하고 교회가 신자들에게 알리바이만 제공해서는 안 되며 이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또 생태적인 것에 관심을 보이면서도 나쁜 습관
을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십니다. 상당히 아픈 지적일 수도 있고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경종을 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이렇게 되면 교회 내 갈등으로 번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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