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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16호【성찰하는 삶】『 도깨비가 살던 섬 -통영 학림도 기행 』 - 강제윤 -
<<유랑자의 노래>>

도깨비가 살던 섬 
-통영 학림도 기행

나무나 돌이 변해서 생기는 도깨비
도깨비, 세상에 이보다 더 어리숙한 신神이 또 어디에 있을까. 어린 시절 고향 섬마을 산
속 외딴집에 살던 친구의 아버지는 밤마다 고갯길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친구 아버지는 
그때마다 술에 취해 있었고 도깨비는 언제나 씨름을 하자고 졸랐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
았다. 친구 아버지의 완승. 다리가 하나뿐인 그 도깨비는 씨름으로는 결코 다리 둘인 사람
을 이길 수 없다. 그런데도 지치지도 않고 씨름을 하자고 덤비는 미련함이라니! 친구 아버
지가 다음날 낮에 멀쩡한 정신으로 도깨비와 씨름하던 장소에 가보면 쓰다버린 빗자루가 
있었다 한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들었던 다른 도깨비 이야기들도 결코 
무섭지가 않았다. 섬은 온통 도깨비와 귀신 투성이였다. 사람과 도깨비, 귀신들이 함께 어
우러져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학림도에도 도깨비가 유난히도 많았다 한다. 그래서 박민출 학림도 이장님(74세)의 도깨
비 이야기는 끝이 없다. 도깨비는 민간신앙에서 믿어지는 초자연적 존재 중 하나다. 도채
비·독각귀獨脚鬼·독갑이狐魅·허주虛主·허체虛體·망량??·영감 등의 다양한 이름을 지니고 
있다. 귀신과는 달리 도깨비는 인간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심술궂고 장난을 좋아
하지만 도깨비는 자신이 가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는 존재였
다. 그래서 제주도를 비롯한 섬 지방에서는 더러 집안의 수호신인 ‘일월조상’이나 어선의 
수호신, 대장간의 신, 마을의 당신堂神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변한 것이고 도깨비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이 변해
서 생긴 것이라 믿어진다. 조선 중기의 학자 권별의 문헌 설화집인 ≪해동잡록 海東雜錄
≫에도 “도깨비는 산과 바다의 음령陰靈한 기운이며, 풀·나무·흙·돌의 정기가 변해서 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사람이 쓰던 물건이 변해 도깨비가 되기도 한다. 부지깽이
나 빗자루, 절구공이, 소쿠리, 방석 같은 것을 버리면 도깨비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
날 시골에서는 그런 것들이 도깨비로 변하지 말도록 불에 태워버리곤 했었다. 

친구처럼 지내던 도깨비
학림도의 도깨비는 주로 한밤중 산과 들에 많이 나타났다. 이장님도 어린 시절에는 도깨
비불 구경을 많이 다녔다. 작은 시미기 뒷산 애기당에 도깨비불이 많았다. 애기당은 아이
들이 죽으면 항아리에 담아다 내놓는 공동묘지였다. 아이들은 뼈가 부드러워 오래가지 않
아 항아리 속에서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 애기당 부근에 엎드려 있으면 애기 우는 소리
가 들리고 도깨불이 켜져서 밤하늘을 돌아다녔다.
이장님은 아버지에게 도깨비 애기를 많이 들었다. 이장님의 아버지는 밤에 낚시를 하려
고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도깨비가 나타났다 한다. 도깨비는 “어이 친구 왔나?” 
하면서 옆에 앉았다. 도깨비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다. 물고기가 잡히면 도깨비는 그것
을 손으로 주물주물 거렸다. 아침 해가 뜨자 도깨비는 사라져버리고 이장님 아버지는 잡
은 생선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선을 꺼내자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남은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필시 도깨비의 장난이었다. 
이 섬의 도깨비도 밤에 술 취한 사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씨름을 하자고 덤볐다. “어 친구 
왔나! 씨름 하세”하면서 허리끈을 잡았다. 학림도의 도깨비는 사람보다 키가 세배는 컸지
만 왼쪽 다리를 넣으면 반드시 넘어가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오른 다리로 걸면 절대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취한 사람이라도 왼쪽 깨(다리)만 넣으면 도깨비
를 이겼다. 도깨비를 넘어뜨린 뒤에는 쫓아오지 못하게 바지 끈으로 묶어 놓았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어김없이 빗자루나 소쿠리 같은 것이 끈에 묶여 있곤 했다. 사람 때
가 묻은 것을 버리면 도깨비나 귀신이 붙는다는 속설 그대로였다.
바다에서도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자리를 가면 멸치가 많이 잡혔다. 섬에는 도깨비만큼이
나 귀신도 지천이었다. 바다에서는 도깨비보다 주로 물귀신을 만났다. 고기잡이를 하다
가 어부가 고단해서 뱃전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면 바다 속에서 털 난 손이 쑥 올
라와 어부를 물속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물귀신은 어부의 상투에 맨 은동구(은동
곶) 때문에 어부를 끌고 갈 수 없었다. 여자의 비녀처럼 남자의 상투에 꽂던 장신구를 동
곶이라 한다. 학림 섬사람들은 은이 잡귀를 쫓는 주술적 기능이 있다고 믿어서 늘 은동구
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섬에 귀신이나 도깨비가 많다보니 그것을 방지하는 비방도 
성행했다. 집집마다 사진 액자에 탱주(탱자)나무를 잘라다 붙였다. 탱자가시가 무서워 잡
귀가 안 붙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어느 섬이나 도깨비가 없는 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림도는 이 근방 섬들 
중에서도 유달리 도깨비가 많았던 섬이다. 도깨비 이야기를 잘 채록해 두는 것도 섬에 큰 
자산이 될 듯하다. 도깨비 섬 학림도. 우리의 삶과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는 도깨비들을 다
시 불러낸다면 섬은 어느 곳보다 더 신화적인 공간이 되지 않겠는가. 신화가 사라진 섬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다. 신비가 없다면 삶 또한 더 이상 신비로운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도시의 삶이 신비감을 잃은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섬이 신비를 잃은 도시민들에게 삶의 
신비를 되살려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신비로운 일이겠는가. 삶에 지
친 도시의 어른들과 신화를 잃어버린 도시 아이들을 섬마을로 불러 모아 섬의 노인들이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이는 단지 신비로운 이야기의 향연에 그치지 않고 지혜의 집
단 전승이 될 것이다. 이는 또 우리 아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
하다.

밤새도록 한 숟갈 두 숟갈 퍼 올려다 물을 먹던 새섬
학림도 인근 섬들에는 새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학림도 또한 학 같은 새가 많다 해서 새
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인근 섬사람들도 학림도라 하지 않고 다들 새섬이라 한다. 근처에 
곤리도 또한 고니가 많이 날아들어서 생긴 지명이다. 그래서 곤리도는 윗섬, 학림도는 아
랫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학림도는 물이 귀한 섬이었다. 지금은 해저 관로를 통해 남강댐의 물이 섬까지 들어온다. 
예전에는 가뭄이 심하면 식수공급선이 들어왔었다. 평상시에도 배를 타고 미륵도 달아 마
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빨래를 해오곤 했다. 그도 아니면 물동이를 이고 산 너머까
지 물을 길러 다녀야 했다. 물 때문에 겪은 여자들의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었
다. 오죽했으면 “밤새도록 한 숟갈 두 숟갈 퍼 올려다 먹었다”고 할까.
학림도는 도미와 우럭 같은 어류 양식장이 많지만 옛날에는 섬 주변이 온통 황금어장이었
다. 지금은 물고기의 씨가 말랐다. 깔치(갈치), 조기, 삼치, 멸치가 지천이었다. 학림도 앞
바다는 평균 14미터 정도로 수심이 깊고 조류 유통이 잘 된다. 그러니 해마다 통영 바다
를 덮치는 적조에도 피해가 적은 편이다. 그 바다 덕에 옛날에는 물고기가 득시글거렸었
다. 지금은 큰 배들이 멀리 동중국해까지 내려가 싹쓸이 해버리니 이 바다까지 살아서 오
는 놈들이 없다. 옛날 학림도 사람들은 통영 전통 어선인 통구미배로 조업을 했었다.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만선이었으니 작은 어선으로도 족했던 것이다. 심지어 삼치 같
은 큰 물고기에 쫓긴 멸치들은 뭍으로 튀어오를 정도였다. 정어리만큼이나 큰 멸치들을 
그저 바구니에 주어 담기만 하면 됐다. 그야말로 바다의 황금시대였다.
학림도에도 산책하기 좋은 길이 있다. 길은 여객선 뱃머리 선창가에서 시작된다. 보건진
료소와 학교, 마을 앞을 지나면 작은 시미기 부근 동산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짧은 길
이지만 숲 터널은 청량하고 그윽하다. 공원 아래는 당랑끝이다. 천연 방파제처럼 생긴 지
형이 풍랑을 막아주는 모퉁이 끝이란 뜻이다. 옛날에는 여기서 해신제를 지냈다 하니 신
성한 땅이다.

영 내리면 바지락을 캐고
작은 시미기 앞 모래벌은 바지락 체험장이다. 마을의 공동 바지락 양식장 중 일부를 외지
인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인근의 섬들 중 학림도에서 가장 많은 바지락이 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흥미위주의 바지락 캐기 체험이 마을에 도움을 주는 일인지는 재고해봐
야 한다. 지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갯벌 생태계를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프
로그램을 개발하여 갯벌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편이 섬을 위해서나 방문객을 위해서 유익
하지 않을까. 
해안 도로를 따라 20여분을 더 걸으면 큰 시미기다. 큰 시미기 해변의 바지락 양식장은 마
을 사람들만 캘 수 있다. 마을 사람이라고 아무 때나 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촌계에서 
“영을 내려야”만 캘 수 있다. 전라도 섬이나 해안 지방에서는 공동 양식장의 채취를 허가
하는 것을 “개를 튼다”고 하는데 이 지방에서는 “영을 내린다”고 한다. 
왜 하필 양식장의 바지락 채취허가가 나는 것을 영 내린다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부
근 섬들이 삼도수군통제영의 통제를 받았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대도가 이순신 장군 
사당인 충렬사의 사패지였듯이 이 섬사람들도 통제영의 부역에 동원되곤 했을 것이다. 또
한 장정들은 누구나 어민인 동시에 수자리를 살던 군인이기도 했었다. 농사를 짓거나 고
기를 잡아 생계를 잇다가 때가 되면 징집을 당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통제영의 명령을 받
고 일하던 때의 기억이 전승되어 언어에 남은 것이리라. 
바지락 양식장은 봄, 가을 몇 차례 영이 내린다. 영이 내린 날이면 주민들은 자신의 능력
껏 바지락을 캐다 팔수 있다. 보통 한사람이 40-50kg 정도를 캐지만 솜씨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100kg까지 캐내기도 한다. 학림도 지명유래집이나 주민들에 따르면 시미기란 지
명은 마을에서 십리길이라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하지만 큰 시미기까지 실제 거리는 2키
로 남짓에 불과하다. 왕복 십리라면 맞겠다. 큰 시미기 서쪽 해안은 깎아지른 기둥 같은 
바위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주상절리다. 섬사람들은 기둥바위 산이라 부른다. 
통제영 시절 학림도는 미륵도 영운리에 있던 삼천진의 관할 하에 있었다. 가뭄이 오래 계
속되면 삼천진 관아에서 이곳 기둥바위산에 와서 기우제를 지냈다. 기둥바위산 주상절리
가 신령한 기운은 뿜어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일대는 명당으로 꼽히기도 했다. 이곳에 
묘를 쓰면 학림마을에 큰 복이 온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지역에는 극심한 가
뭄이 든다고 믿어졌다. 그래서 실제로 심한 가뭄이 들자 이곳의 묘를 파내버렸다는 이야
기가 전해온다. 추도에도 비슷한 전설이 있다. 추도 미조 마을 앞 용머리 섬에도 천하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명당자리에 묘를 쓰면 마을이 가물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
어서 아무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해 마을의 모든 샘의 물이 다 말라 버렸다. 도인을 
모셔다 원인을 알아보니 누군가 용머리 섬 명당에 묘를 썼던 모양이다. 묘를 이장 시키자
마자 비가 쏟아졌다고 전한다. 그 이후 용머리 섬은 나무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신성한 섬
이 됐음은 물론이다. 섬사람들에게는 물이 얼마나 절대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전설들이
다. 명당자리 보다 더 소중한 게 물이었던 것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 어찌 죽은 이의 묘 
자리에 비할 것인가.

이 땅 어딘들 없겠는가마는 이 섬에도 어김없이 비극적인 사랑의 전설이 내려온다. 큰 고
래개와 검금굴 사이에는 상사바위란 이름의 바위가 있다. 옛날 이 섬의 어떤 총각이 처녀
를 짝사랑 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었다. 총각의 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뱀으로 변신해
서 처녀에게 올라붙었다. 총각 귀신이 붙은 처녀는 온갖 처방을 다 해봐도 떨어지지 않자 
저 바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그렇게 총각도 죽고 처녀도 죽었다. 일방적이고 지나친 집
착은 자신도 죽고 상대도 죽인다. 그것을 어찌 사랑이라 이를 수 있을까. 저 바위를 사랑
바위라 하지 않고 상사바위라 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상사는 사랑이 아니라 병인 것이
다. 아, 그러나 상사만이랴. 때론 사랑도 병인 것을. 그것도 불치의 병인 것을. 환자가 낫
기를 원치 않으니 결코 나을 수 없는 불치병.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도 나처럼 그대의 병
이 치유되지 않기를 원하는가. 섬에서 묻는다.

강제윤 / 시인, 섬여행가, 『통영은 맛있다』,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이다』, 『섬을 걷
다』, 『어머니전』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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