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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54호【민들레국수집】『 도와주겠다는 말은 절대로 믿지 않는 가난한 분들 곁에서 』 - 서영남 -
<<나눔문화_민들레 홀씨되어>> 

도와주겠다는 말은 절대로 믿지 않는 가난한 분들 곁에서

서영남 /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무료식당을 하며, 가난한 모든 분들에게 식사
를 제공하고 있다. 

거주할 곳을 마련하고 말소된 주소를 살려야
형욱 씨는 민들레국수집에 자주 오지는 않았습니다. 동네 단칸방에 월세를 살면서 막노동
을 다녔습니다. 몸이 약해서 일거리를 얻는 것이 가뭄에 콩 나는 정도였습니다. 먹을 것
이 하나도 없으야 아주 미안해하면서 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살면서도 돈
이 조금 여유 있으면 민들레 꿈 공부방 아이들 먹으라고 과자를 선물하던 이였습니다.
그러던 분인데 두 달 전부터는 거의 매일 밥 먹으러 옵니다. 많이 아픈 모양입니다. 제대
로 걷지도 못합니다. 일하지 못합니다. 결국, 방세를 내지 못하고 거리로 쫓겨났습니다. 
동인천역 광장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어느 작은 교회에 잠자리를 얻었다고 합니다. 밥은 
알아서 해결하고 잠만 교회에서 잘 수 있다고 합니다.
작은 교회에서 국숫집까지는 약 200m 거리입니다. 몇 걸음 걷지 못하고 쉽니다. 한 시간
도 넘게 걸어서 겨우 국숫집에 와서 밥을 조금 먹었습니다. 주저주저하면서 헌 목발이라
도 있으면 얻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목발을 구하러 동인천역 근처에 있는 의료기 가게
에 부지런히 걸어갔습니다. 새 목발을 그냥 선물 받았습니다. 목발을 들고 돌아오면서 아
무래도 그냥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목발을 형욱 씨 몸에 맞게 맞춰주면서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작은 교회에 가서 자야 하는
지 물어봤습니다.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합니다. 형욱 씨는 구청에 긴급의료지원을 받아
야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데, 그러려면 거주할 곳을 마련하고 말소된 주소를 살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일 여인숙 방 하나를 얻어주겠다고 했습니다. 한 달 치 방세를 미리 
내고 영수증을 받아서 복지센터에 가서 주소 이전을 하면 주민등록이 되니까 그것부터 하
면서 치료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찜질방에서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찜질
방 표와 가운 비를 챙겨드렸습니다. 슬쩍 용돈 만 원을 집어넣었습니다.

퇴원하기에는 무리인데 병원에서 퇴원 절차를 밟아 달라고
살 곳이 없는 노숙 손님이 가장 저렴하게 주소지 등록이 가능한 주거지를 확보하는 방법
입니다. 여인숙은 보증금이 없습니다. 한 달에 20만 원 정도의 방세를 선급으로 내면 됩니
다. 최소한의 살림살이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냥 몸만 들어가도 됩니다. 세면도구만 챙겨
드리면 됩니다. 좀 더 쾌적한 잠자리는 고시원 또는 여관방입니다. 여인숙 비용보다는 좀 
더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찜질방은 하룻밤을 최소의 비용으로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하
룻밤 비용이 7,000원 정도입니다만 민들레국수집은 할인해서 장당 3,500원에 사 옵니다. 
대신 환급은 불가능합니다. 찜질방에 입장할 때 필요한 가운 비는 천 원인데 별도입니다. 
보통 때는 노숙 손님들이 부탁할 때 한두 장 드립니다. 그리고 날씨가 몹시 춥거나 더울 
때는 식사하러 온 손님들에게 나눠드립니다. 그렇지만 찜질방에 가서 환급은 안 됩니다. 
찜질방 가운 비는 스스로 내야 하지만 천 원이 없는 분에게는 그냥 가운을 드린다고 합니
다.
다음 날 목발을 집고 한결 편한 얼굴로 형욱 씨가 왔습니다. 여인숙에 방을 마련하고 영수
증을 받아서 복지센터에 가서 주거지 이전을 하기 위해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렸습니다. 
과태료를 냈습니다. 모친이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것을 알았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곧
바로 사회복지사를 만났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 위한 서류도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주소지로 되어있는 여인숙에 가서 구청에 전화하면 담당 공무원이 찾아갈 것이라
고 했습니다.
여인숙에 가서 구청에 전화했습니다. 정말 담당 공무원이 찾아왔습니다. 형욱 씨의 상태
를 보고 곧바로 응급차를 불렀습니다. 함께 응급차를 타고 인천의료원에 갔습니다. 형욱 
씨는 의료 보험도 없습니다. 공무원의 도움으로 행려자 지위로 진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 인천의료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현재 형욱 씨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고 합니
다. 심장이 너무 안 좋습니다. 상급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답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세상
으로 떠날 뻔했답니다. 겨우 쉰다섯 살인데…. 인하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인
하대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어젯밤 늦게 중환자실로 입원이 되었습니다. 인하대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중환자실
에 입원해 있는데 필요한 물품을 보내 달라는 것입니다. 기저귀와 물티슈 등 필요한 물품
을 전해주러 갔습니다. 이제 살 것 같다고 합니다. 숨도 편히 쉴 수 있고 가슴도 아프지 않
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빨리 퇴원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돈이 없는데…. 병원이 겁이 난다
고 합니다.
며칠 후 병원에 면회를 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습니다. 형욱 씨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78킬로 되던 몸이 부기가 빠지니 52킬로가 되었답니다. 55년 평생에 이렇
게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밥도 잘 먹습니다. 그러면서 입원비 걱정에 
빨리 퇴원하고 싶답니다.
아직 형욱 씨가 퇴원하기에는 무리인데 병원에서 퇴원 절차를 밟아 달라고 합니다. 긴급
의료지원비 삼백만 원이 초과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퇴원 절차를 밟았습니다. 초과
한 진료비 70만 원을 지급하고 형욱 씨는 퇴원했습니다. 약을 받고 열흘 후에 진료 예약
을 하고 여인숙에 돌아왔습니다.
열흘이 지나는 동안 형욱 씨는 약을 먹고 국숫집에 와서 식사하고 쉬었습니다. 그리고 약
이 떨어지기 전에 함께 병원에 가기로 했는데 진료 받는 날 아침 일찍 혼자 병원에 갔다
가 그냥 돌아왔습니다. 진료비 낼 돈도 없고 검사비 낼 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형
욱 씨 생각에는 돈 없어도 진찰을 해 주는 줄 알았을 것입니다. 구청에 연락했습니다. 긴
급의료지원비 삼백만 원을 모두 썼기 때문에 더 치료받으려면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만 했
습니다.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휴가를 갔고, 돌아와서 처리를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때 마침 저는 열흘 동안 필리핀을 다녀왔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아이들에게 장학
금을 나눠주고, 나보타스에는 조그만 공부방(방과후 작은학교)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인숙에서 혼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형욱 씨의 약이 떨어졌습니다. 구청에서 연락을 준다고 했었는데 연락이 없었습니다. 형
욱 씨는 심장이 견딜 수 있도록 약을 먹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빨리 나을 욕심에 부지
런히 걷기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여인숙에서 혼자 하늘나라로 떠
났습니다. 고독사입니다. 여인숙 주인이 발견했습니다. 경찰이 와서 확인하고 구청에서 
보낸 사람들이 정리를 끝냈습니다. 아마 어느 화장장에서 한 줌 재로 변했을 것입니다. 휴
가에서 돌아온 구청 공무원은 깜빡 잊어버렸다고 미안하다고 합니다. 여인숙 주인은 자기
도 손해가 많아서 남은 며칠치 방세는 내어줄 수 없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 손님들이 어느 날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잊힐 만하면 불쑥 나타나기도 합니
다. 삐쩍 말라서 피골이 거의 한 달 만에 나타난 손님이 있습니다. 너무 아파서 못 움직이
고 그냥 굶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손님들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말
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도와주겠다는 말은 절대로 믿지 않습
니다. 도와주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신세를 망쳤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입니다.

그저 말없이 밥 한 그릇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딱한 사정을 듣고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도와주겠다고 하
면 삼십육계 줄행랑으로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면 절대로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말없이 밥 한 그릇 편히 먹을 수 있도록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씩 가까이 갑니다. 말을 걸기도 하고, 담배 한 개비 내밀기도 합니다. 그래서 반응을 
보이면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찜질방에서 지낼 수 있도록 거들어줍니다. 
한 달쯤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밥은 국숫집에서 먹고 민들레희망센터에서 책을 보면서 소
일하게 합니다. 그러다가 여인숙이나 고시원에서 한두 달 지낼 수 있도록 거들어주면서 
살 방법을 함께 고민해봅니다. 며칠 지내다가 사라지는 이도 있습니다. 고시원에서 또는 
여인숙에서 지내다가 말도 없이 떠나는 이도 있습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있
을 것 같아서 주민등록을 살리려고 하면 떠나기도 합니다. 아마 기소중지가 되었기 때문
입니다. 또 형욱 씨처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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