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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48호【공동선을 열며】『 당신과 나의 사랑법 』 - 김형태 -
<<공동선을 열며>>

당신과 나의 사랑법

김형태 / 발행인,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아침 일찍 뜰에 나서니 진노랑 금계국 꽃들이 가녀린 줄기 끝에 매달려 무리지어 하늘거
립니다. 누렇게 바래가는 봉숭아 이파리 위로 비스듬히 떨어지는 햇살도 어제와는 다르
게 힘이 없습니다. 창문을 열면 내 몸 온도보다 더 뜨거운 바람이 후끈하게 밀려들던 여름
도 이제 거반 지나간 게 틀림없습니다. 
도봉산 중턱 관음사 마당에도 잠자리 떼들이 맴을 돕니다. 절 초입을 막 들어서는 노인네 
배낭에 매달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여인의 애절한 노래소리에 산사는 더욱 적막합니
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얼마나 사모하는지.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 게요.” 
님을 향한 애틋한 마음에 법당 안 부처님도 가슴 짠해 하실 거 같습니다. 
옛날엔 유치하다 제쳐놓던 유행가 가사들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 걸 보면 이제 좀 철이 들
어가는 건가. 사는 게 뭐 별 거던가요. 
가십니까, 날 버리고 가십니까. 잡아두고 싶지만 싫증나면 아니 오실까. 이별하기 서러운 
님 보내오니, 가시자마자 다시 오소서. 고려 때 유행가 <가시리>도 그런 사랑을 안 해 본 
사람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절창絶唱이지요. 동서고금을 통해 수도 없이 많은 사랑 노래
가 때론 우리를 울리고 때론 우리를 위로합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을 계속 존속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자식을 낳는 거고 이를 
위해 암수간의 사랑이 있는 것이니 그 속성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거지요. 자식 사랑도 
‘제 분신’인 자식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근본에 있어서 이기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 속성의 사랑도, 그 사랑을 제대로 하는 이들은 정말 자신은 잊고 상대
에게 주기만 하는 사랑도 감수한다는 거지요.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유한한 인간이 그 유
한성을 뛰어넘는‘초월’을 하는 겁니다. 진짜 사랑을 통한 유한성으로 부터의 초월.
남을 먹어야 살고, 또 언젠가는 죽어 소멸한다는 이 절망적인 유한성을 뛰어 넘어보고자 
여러 종교가 나타났습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신과 이웃을 향한 절대적 사랑을 말합니
다. 불교는 세상 모든 게 서로 기대어 있어, 저 혼자 변하지 않고 독립된 실체는 없다는 연
기緣起)법칙을 깨달아 삼라만상에 자비를 베풀라 합니다.
이 모두가 다 나의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부이고 노력들입니다. 그런데 실상 많
은 종교인들이 이 초월의 사랑법을 이기적 사랑법으로 잘못 새기고 있습니다. ‘내’가 구원
받아 영원히 살고,‘내’가 해탈하여 열반에 들겠노라고. 그러다보니 그 하는 말과 생각과 행
동이 다 자기중심적입니다. 이기적인 암수간 사랑이나 자식 사랑에서 출발하여 정말 이기
를 초월하는 속세의 사랑도 있는데 말입니다. 
개신교 찬송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로다, 영생을 얻으리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가사로 한 건데 이걸 이렇게 잘못 새기면 최악의 이기주의 찬양 노래
가 됩니다. “‘내’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기위한 방편으로 독생자를 믿는다. 독생자를 믿는
다는 건 독생자가 나의 구세주라는 걸 믿는 것이다.” 이기利己를 위해 예수라는 이름을 빌
리는, 동어반복의 끝없는 연속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건 예수가 자기를 버리는 사랑을 함으로써 개체를 초월하여 전체와 하
나 되었음을 믿는다는 거겠지요. 열심히 공부한다는 스님들도 그렇더군요. 이 개체 ‘나’가 
깨우침을 얻어 열반의‘지위에 들어가는’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음을 모르고, 개체 ‘나’의 
깨달음과 열반에 평생 목을 매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봅니다. 
스승님들의 삶과 가르침을 곰곰 생각해보면, 영생이나 열반은 이 몸이 죽은 뒤에 다시 이 
개체를 유지하면서 살아나서, 어디로 가는 게 아니고,‘지금 여기서’사랑과 자비로 이 개체
의 유한성을, 삶과 죽음의 차원을 넘어서는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개체의 유한성을 
넘어서는 순간 초월의 주체가 되는 개체‘나’는 이미 없어진 거지요. 그래서 개체인 ‘나’의 
초월을 바라는 건 헛된 꿈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나’라는 유한성으로 부터의 초
월을 꿈꾸기도 하고 사랑을 통해 남을 내 수단으로 삼아 나를 더 강화시키려 하기도 합니
다. 대부분의 사랑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겠지요.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랑 노래며 종교의 
가르침들이 다 이 ‘사랑’의 여러 변주곡들입니다. 조선 기생 매창의 이런 사랑법도 있군요.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여라…
내 가슴 흐르는 피로 님의 얼굴 그려내어/ 내 자는 방안에 족자삼아 걸어두고/ 살뜰히 님 
생각날 제면 족자나 볼까 하노라
당신과 나의 사랑법은 어떤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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