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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47호【성찰하는 삶】『 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복되나니 』 - 김형태 -
<<공동선을 열며>>

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은 복되나니

김형태 / 발행인, 법무법인 <덕수> 대표변호사

얼마 전 이희호 여사가 돌아가셨습니다. 국민과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마지
막 말씀이 있었답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여성, 장애인 등 평생 이웃을 위해 애쓴 분 유언
답습니다. 임종 때 가족들이 부르는 찬송가를 따라하려고 희미하게 입술을 움직이다 평화
로이 가셨다니 참 복 받은 게지요. 
10여년 전 가신 이돈명 변호사 마지막 모습도 그렇게 평화로웠습니다. 소식을 듣고 바로 
댁으로 달려갔는데 저녁 잘 드시고 주무시듯 가셨더군요. 변호사님은 오랜 세월 동안 수
많은 인권, 시국사건을 변호하다가 급기야는 감옥살이까지 했으니 마지막 평화로움으로 
그 보상을 받은 걸까요. 평생 자가용 차 한번 가지신 적이 없고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
도 전철을 타고 다니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지요.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
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
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예수님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자비롭고 화평케 하는 사람들이 
받을‘복’이란 게 그냥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바로 그 복일까요? ‘안 아프고, 돈 잘 벌고, 부
모 자식 간 가정 화목하고, 사람들 칭찬받고, 죽을 때 고생 안하고’하는 그 복. 여기다 더 
욕심내면 ‘구원받아 죽어서는 하늘나라 가는’복. 
이제는 장가갈 나이가 된 우리 아들 녀석 첫 영성체 본명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나는 처
에게 아들 본명을 ‘토마스 모어’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영국 헨리 8세 때 최고 법관
이자 재상이요 사상가로 <유토피아>라는 저서를 남겼지요. 세속世俗적 기준으로 남부러
울 게 없는 사람이었지만, 세속의 욕심에 빠지지 않고 내면의 자유를 누렸던 성인이었습
니다. “세속 안의 자유”. 한스 큉 신부는 그의 삶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하지만 본명을 고
르면서 아들이 좋은 건 다 누리기를 바라는 내 심사는 ‘세속 안의 자유’와는 영 거리가 멀
었습니다. 처도 나와 똑같이 세속적인 욕심에서 내 제안에 반대를 했습니다. “아니, 우리 
귀한 아들에게 하필 절두형을 당한 분 이름을 붙이다니요. 안돼요.”토마스 모어가 헨리 8
세의 재혼을 반대하다 처형당한 걸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맞받았지요. 
“아, 현 김대중 대통령도, 내 옆방에 계시는 이돈명 변호사님도 토마스 모어인데 다 출세
하고 칠, 팔십 장수하고 계시잖아.” 결국 아들 본명은 토마스 모어로 낙착되었지만 처는 
여전히 찜찜해 했습니다. 
그런데 현세의 두 토마스 모어는 부귀와 장수의 복을 다 누렸다지만, 형장에서도 내 수염
은 죄가 없다며 수염을 젖히고 태연히 목에 칼을 받았다는 저 옛날 토마스 모어도 복 받
은 사람일까요. 세속의 기준으로는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하지만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
는 이는 행복하다 하셨으니 분명 예수님께서는 그를 행복한 이라고 일컬으시겠지요. 하늘
나라가 그의 것이라고도 하실 겁니다. 
그러면 토마스 모어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박해를 받았지만 하늘나라 가서는 정말 잘 먹
고 잘 사는 영복을 누리게 되는 걸까. 예수님 말씀을 보면 그 하늘나라마저도 우리 기대와
는 영 다른 곳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기득권층의 압제에 신음하던 2천년 전 유다 
땅
을 두고도 하느님 나라가 이미 가까이 와 있다고 하셨고,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도 하셨
고, 겨자 씨 같고 누룩 같다고도 하셨으니, 묵시록에 묘사된, 문자 그대로 각종 옥과 유리
와 순금으로 이루어진 그런 천국은 아닙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초한 칼 라너 신부는 ‘믿음’이나 ‘착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받을 
복
인 영원한 삶이나 부활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영원(한 삶)은 우리의 시공적, 생
물학적으로 살아온 시간의 “후에”의 시간을 계속한다는 것이 아니고, 영원이란 시간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로 시간을 지양止揚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서 죽은 뒤 이 내 
몸이 다시 살아나 시공간에서 계속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의 인격과 관심사의 존속이며 이는 누군가 한 사람의 인간과 역사의 
존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영원한 삶을 희구합니다. 힌두교 성전 <바가바드 기타>
에도 ‘즐거움과 괴로움을 같은 것으로 여기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이는 영원한 삶을 얻기
에 적합하나니’(2장 15절)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지낸 저명한 인도철학자 라
다크리슈난은‘영원한 삶’이라는 대목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Eternal life is different from 
survival of death. It is the transcendence of life and death. (영원한 삶이란 죽음을 넘
어서서 존속한다는 것과는 다르며,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현세와 내세에서 ‘나’의 행복을 누리려 종교를 열심히 믿고 착한 일
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모든 종교의 스승들께서 가르치신 알짬은 자기중심성, 이기심
을 버리고 해서 자비를 베풀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행복이요, 영원한 삶이라
는 겁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의 자기주장과 욕심 없이는 한 치도 굴러가지 않습니다. 이런 세속 안에
서도 저 ‘토마스 모어’들처럼 이기심을 자제하고 정의와, 자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이들
은 복됩니다. 
그리고 그들의‘인격과 관심사’는 영원히 존속할 것이요, 하늘나라가 그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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