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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44호【문화】『 가난한 사람에게는 점처럼 작고 여리게 다가가야 합니다 』 - 서영남 -
<<나눔 문화 - 민들레 홀씨되어>>

가난한 사람에게는 점처럼 작고 여리게 다가가야 합니다

서영남 / 인천에서 <민들레국수집>이라는 무료식당을 하며, 가난한 모든 분들에게 식사
를 제공하고 있으며, 현재 필리핀에서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

“환대가 존재하려면 사람들이 그 둘레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사람
들이 피곤해지면 거기서 잠도 잘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 인사라든지 학력이 높은 고상한 
사람이라든지 그러한 관념이 개입되는 곳에서는 환대는 깊이 훼손당합니다. 내 생각으로
는, 우리의 희망이 달려있는 한 가지 단어를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환대라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지방과 테이블과 참을성, 그리고 귀 기울여 듣는 습관을 회복하
면서 환대의 관습을 부활하여, 거기로부터 덕성과 우정의 묘판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
으로는 공동체의 재생再生을 향하여 빛을 발산하게 될 희망 말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말입니다.
가난한 우리 손님을 어떻게 환대하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2003년 4월에 10제곱미터도 채 안 되는 공간이라서 주방과 식탁의 경계도 없는 작은 공간
에 식탁 하나 놓고 간이 의자 여섯 개를 놓고 시작한 민들레국수집입니다. 가난한 사람에
게는 작고 여리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야 만날 수 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여섯 명이 
겨우 앉을 수 있는 작은 식탁 하나 놓은 누추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하루 끼니를 걱정해
야 하는 노숙하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아무 때고 찾아와서 식사를 하고 갈 수 있는 곳
이 되었습니다. 처음 민들레국수집을 계획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손님들에게 제대로 된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려고 요리학원을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손님들이 눈칫밥
을 먹지 않아도 되도록 요식업 등록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라의 지원을 받으면 간섭받는 
것은 물론 일인당 급식량도 정해지기에 지원도 사양했습니다. 나중에 음식을 판매하지 않
기에 요식업 등록은 무의미한 일이라서 그만 두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은 처음에는 국수를 내놓았지만 국수로는 충분한 끼니가 되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이 국수를 두세 그릇을 먹고도 밥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한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서 밥과 반찬을 고루 내놓는 밥집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진짜 국
수집을 하나 더 차리기도 했지만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서 3
년 만에 그만 두기도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했을 때 알코올 중독자나 노숙자, 사회 부적응자들이 동네로 몰리면
서 자주 소란을 피웠습니다. 동네사람들의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도대체 게으른 사람들에
게 왜 밥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주변에 소변이나 보고 툭하면 술에 취해서 싸우는 일이 빈
번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웃들이 따뜻하게 바뀌었습
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돕는 일에 나섭니다. 이웃들이 손
님들을 따뜻하게 대하면서 우리 손님들도 변했습니다. 손님들은 되도록이면 민들레국수
집이 있는 동네에서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거리의 꽁초와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습
니다. 눈이 오면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동네 골목길을 쓸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민들레
국수집이 문을 닫는 목요일과 금요일은 동네에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적막하다고까지 이
야기합니다.
민들레국수집 주변에도 무료급식소가 몇 곳이 있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시간에만 운영합
니다. 그리고 그 밥을 먹으려면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합니다. 길게 줄을 서야 합니다. 그마
저도 운이 나쁘면 기다린 보람도 없이 밥이 떨어졌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민
들레국수집은 작고 누추한 곳이기는 하지만 오전 열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길게 문을 
열어 놓기에 오다가다 들러 밥 한 그릇 먹고 가면 됩니다. 얻어먹는 설움도 덜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서는 손님들에게 그날그날 끼니만 해결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인생의 막
다른 길에서 흔들리는 그들을 일단 붙들어 줍니다. 그 다음에는 비빌 언덕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어버렸을 때 기력을 북돋아줍니다. 살아날 희망이 조금이
라도 보이면 독립된 생활공간을 마련해 주고 약간의 용돈도 주면서 노숙을 벗어나 민들레
의 집 식구로 살게 합니다. 민들레의 집도 작게 시작했습니다. 한 명을 돕는 것입니다. 단
칸방을 월세로 얻을 정도만 마련하면 도와줄 분을 찾습니다. 그렇게 한 명씩 돕는 일을 하
면 돈이 조금만 있어도 가능한 일입니다. 민들레 식구들은 민들레국수집을 중심으로 각
자 흩어져서 독립적으로 지내면서 자기가 원하는 때에 국수집에 와서 밥 먹기도 합니다. 
느슨한 공동체 형태입니다. 각각 독립적이면서 어려울 때 서로 협력하자는 정도의 규칙
만 있습니다.
수도원 생활하던 시절부터 교도소를 돌며 교정사목 활동을 해왔던 것처럼 지금도 재소자 
형제들과 편지와 전화를 나누는 틈틈이 매달 청송 교도소로 면회를 가고 상담도 하고 전
국에 흩어져 있는 장기수 형제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그러다가 2008년에는 노숙하는 이들
과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이 대다수 어릴 때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보고는 가
난한 아이들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습니다. 조그만 집을 하나 얻어서 민들레 꿈 공부방
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과 작은 어린이 도서관인 민들레 책들
레를 마련해서 동네의 가난한 아이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서 지금껏 운영해 오고 있습니
다.
2009년에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첫아들 돌잔치를 민들레국수집에서 하
고 싶다고 했습니다. 잔치 비용으로 우리 손님들에게 불고기를 대접했고 젊은 부부는 힘
들게 설거지를 도맡았습니다. 잠깐 쉬는 틈에 아이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
봅니다. 노숙하는 분들이 스스로 살아날 수 있게 조그만 문화센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건복지부의 도움을 인천교구를 통해서 받아서 민들레희망
지원센터를 시작하게 되었고 이어서 무료진료를 할 수 있는 민들레진료소와 민들레 옷가
게를 시작했습니다.
2013년에는 청암상을 받았고 그 상금으로 노인들을 위한 진짜 민들레국수집을 열어서 3
년을 운영하다가 닫았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에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을 
시작하려는 준비를 했습니다. 민들레국수집 10주년 감사미사 때 주교님께서 필리핀의 가
난한 아이들을 돕는 일에 교구도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인천교구와 필리핀 진출
할 준비를 했는데 곤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당시 사회사목국장 신부의 터무니없는 트집
으로 민들레국수집은 희망지원센터 건물을 포기하고 인천교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취소
했습니다.
2014년에는 인천교구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상태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을 칼로오칸 교
구의 성당 부속건물을 무상임대해서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말라본의 빈민지역 한 곳과 나
보타스의 성당 이층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무료급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이 지났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갈 즈음입니다. 2016년 3
월에 뜬금없이 인천주보에 민들레국수집에 대한 인천교구의 입장이라는 글이 실렸습니
다. 참으로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필리핀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
기 시작했습니다. 칼로오칸 교구의 태도가 백팔십도 변했습니다. 말라본과 나보타스의 가
난한 아이들을 위해 했던 무료급식을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재원을 들여 리모델링했
던 건물도 반환했습니다. 비품들은 모두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아이들의 장학
금 지원만 남겨 두고 2017년 1월말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리핀에 장학금 지원만 남겨 놓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가난한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다
시 도울 길이 없을까 고심했습니다. 필리핀에도 민들레국수집이 처음 시작했던 것처럼 작
고 여리게 다시 시작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로오칸에서 우리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 조그
맣게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현지 성당과 봉사했던 사람들과의 여러 문제로 포기할 수밖
에 없었습니다. 그 대신 더 변두리 가난한 곳인 나보타스의 탱고스 마을과 카비테의 시골 
마을에서 민들레국수집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한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이렇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곳 모두 아주 작은 민
들레국수집이 있고, 급식시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책장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장학생과 아이 엄마와 어린 동생도 함께 식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필
리핀사람인 책임 봉사자가 있고 우리 장학생 아이들 엄마들 중에 몇 명의 봉사자가 있습
니다. 매일 현장 사진과 식단 그리고 식품 구입 영수증을 카카오 톡으로 보냅니다. 그리
고 운영비는 매월 두 차례 씨티 은행에서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 네 차례 
필리핀으로 가서 장학금을 나누고 필요한 것들을 지원합니다. 2018년 11월 중순에 필리핀
을 방문해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고 장학금을 나누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면서 민들레국
수집처럼 작고 여리게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놀라운 일들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금 확인했습니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면서 다른 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환대가 존재하려면 사람들이 그 둘레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사람
들이 피곤해지면 거기서 잠도 잘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 인사라든지 학력이 높은 고상한 
사람이라든지 그러한 관념이 개입되는 곳에서는 환대는 깊이 훼손당합니다. 내 생각으로
는, 우리의 희망이 달려있는 한가지 단어를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환대라는 말이 될 것 같
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지방과 테이블과 참을성, 그리고 귀기울여 듣는 습관을 회복하면
서 환대의 관습을 부활하여, 거기로부터 덕성과 우정의 묘판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
로는 공동체의 재생(再生)을 향하여 빛을 발산하게 될 희망 말입니다.” 이반 일리치의 말
처럼 가난한 우리 손님들을 좀더 제대로 환대하기 위해 ‘민들레 카페’를 열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열면서 네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정부 예산을 받지 않고, 돈을 얻기 위한 
프로그램에 공모하지 않고, 후원 조직을 만들지 않고, 부자들이 생색내는 후원은 받지 않
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줍니다. 사실, 배고
픈 사람들에게는 밥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이 한 그릇 
밥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리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대접하는 데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
습니다.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에는 시작할 때부터 예수살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소유로부
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을 민들레국수집
의 정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 글귀는 식당 벽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주방 쪽에 걸린 
칠판에는 김남주의 시 “사랑”이 적혀 있습니다.
‘사랑만이/ 겨울을 이기고/봄을 기다릴 줄 안다/사랑만이/불모의 땅을 갈아 엎고/제 뼈
를 갈아 재로 뿌릴 줄 안다/천년을 두고/봄의 언덕에/한 그루의 나무를 심을 줄 안다/그
리고 가실을 끝낸 들에서/사랑만이/인간의 사랑만이/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
2019년에는 민들레국수집 브이아이피 손님들이 돈 없어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민들레 
카페를 꾸며 보려고 합니다. 
커피와 테이블 그리고 따뜻한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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