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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39호【권두인터뷰】『 가난한 예수, 가난한 사람들 』 - 편집부 -
<<대화>>

가난한 예수, 가난한 사람들

지성용 / 가톨릭 인천교구 용유동 성당 주임신부
우희종 /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학장, 바른불교재가모임 대표
류상태 / 종교작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류상태: 오늘 대화의 주제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예수입니다. 요즈음 종교권력의 자
본화, 세속화 문제로 한국사회가 시끄럽습니다. 특히 대형교회가 이런 비난의 중심에 있
습니다. 지난 2017년 11월에 가톨릭 신학을 공부했지만 정규적인 신학자나 사제의 길을 
걷지 않은 평신도 신학자인 김근수 선생이 <가난한 예수>라는 책을 썼어요. 책을 보면 
“하느님이 가난한 사람을 선택했듯이, 그리스도교는 가난한 사람을 선택해야 하고 예수
가 가난하게 살았듯이 교회도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예수를 잘 
모른다, 왜냐하면 가난한 이를 알아야 예수도 알 수 있는데 가난한 이를 모르기 때문에 예
수도 모르는 것이다.”라고까지 주장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지성룡: 김근수 선생이 “한국교회가 예수를 모른다.” 라고 말한 것은 상당히 도발적인데
요, 저는 이런 부분에서 김근수 선생과 공감을 가지고 있어요. 예수가 선포한 복음적인 삶
과 한국교회가 가고 있는 길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복음과 교회가 다른 지향을 갖는 것
입니다. 복음의 예수는 틀림없이 가난한 삶을, 또 억압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 가운
데 있었는데 지금 현재 2018년의 한국교회는 그런 예수의 가르침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부분에 대한 명쾌한 지적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즉, 가난하지 않은 
종교, 가난하지 않은 성직자,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종교, 참여하지 않는 종교, 역
사의식이 없는 종교에 대한 힐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희종: 저는 김근수 선생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 예수님은 왜 가난한 자를 선택
하셨는가라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만족에 취해있는 자들이 과연 
예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김근수 선생은 진정한 예수의 뜻을 담을 수 있는 그릇 자체가 이미 가난한 
자에게 있는 것이고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겪는 수많은 삶의 질곡과 고통에 대해 사랑의 
마음이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감하고요. 그리고 한국교회가 예수를 모른다고 하는 것
은 지금의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과연 한국교회가 진정한 가난에 대한 의
미를 새기면서 예수와 함께, 가난한 자와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를 보면서 공감합니
다.

류상태: 교회가 반드시 가난해야 하느냐, 오히려 부를 소유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을 효
과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느냐, 부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희종: 부를 바라보는, 부를 수용하는 마음, 욕망의 문제라고 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재화 자체에 자기가 
주인이 되어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이죠, 이미 마음이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재
물로 자신의 욕망을 만들어 가지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지, 정말 사욕을 버리
고 자기 삶 자체를 청결하게 한다면 부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성룡: 대화의 주제가 가난한 예수, 가난한 사람들인데, 이 가난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와 사람들의 가난이 과연 같은 것이었을까요? 예수의 가난은 사실 
자발적인 가난이거든요,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었지요, 모든 것을 할 수도, 가질 수도 있었
지만요. 반면에 억압받는 민중들의 가난은 제도적인 가난이고 구조적인 가난이고 강요되
고 또 피동적인 가난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사회 제도 속에서 가진 자들에게 강요당하
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죠. 제도와 구조가 만든 가난이죠.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을 말 그대로 당하는 거죠, 구조적으로 착취를 당하니까. 이런 면에서 가난의 
의미를 우리가 나눠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늘 대화에서 가난이 화두로 나
온 것은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가난한 사람들이 생겨나는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외면하고 
있고, 그들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가난하지 않은, 오히려 부에 편승하거나 부
의 편을 들고 부를 가진 사람들의 사교의 장이 되기 때문에 문제를 삼게 되는 것이라고 생
각합니다. 

우희종: 좋은 지적인데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고 할 때 그걸 물질적으로만 본다
면,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면, 가난한 사람 중에서도 굉장히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많습니
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세가 어떤가? 가난해도 남을 돕는 사람이 있고 가난하면서
도 가난하기 때문에 남을 속여서라고 살기 위한 몸부림, 인간적으로는 비난할 수 없습니
다만. 최소한 종교적 차원에서는 그런 가난함 속에서도 구분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생각
합니다.

우희종: 그런데 예수님이 선택한 것이 자발적 가난이였나요? 부자나 가진 자를 선택할 수
도 있었을 텐데요.

지성룡: 겟세마네동산에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이 다가오니까 베드로가 칼로 마르
쿠스라는 사람의 귀를 잘라내잖아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칼을 거둬라, 내가 지금이라도 
불벼락을 내리려면 불러올 수 있지만 지금 내가 가야할 길이 있다.”라고 하시잖아요. 이
런 것만으로도 하나의 커다란 상징이 되는 거죠. 

류상태: 복음서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였
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나눔이었다고 봅니다. 한 소년이 도시락
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자기 도시락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눠먹게 되어 
오천명이 나눔을 누리는 거죠. 우리가 이 사건만 주목하기가 쉬운데 그 다음에 아주 중요
한 얘기가 나옵니다. 이 다음에 사람들이 ‘아! 예수님 따라다니면 먹고사는 문제 해결되겠
다.’ 고 해서 구름같이 몰려왔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너희들이 나를 따르는 것은 정
말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늘의 뜻을 알기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부르
기 때문이다. 돌아가라.”고 하시며 싹 다 돌려보내거든요. 그들을 돌려보냈다는 것은 예수
님이 자발적으로 가난을 선택했고 의미를 선택했다고 하는 하나의 중요한 상징이죠.

우희종: 예수님은 마음의 문제, 정말 주님을 향해 가느냐는 점을 지적했어요. 물질적인 풍
요, 혹은 물질이 없어서 너는 가난하니까 내게로 와라가 아니며, 무조건 가난한 사람이면 
그냥 예수님이 함께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류상태: 그런데 가난을 제도적인 측면보다는 마음의 문제, 영성의 문제로 몰아가는 경우 
기독교가 갖고 있는 사회성이나 현실성을 약화시키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어요.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가난한 사람들만의 하나님은 아니지 않은가, 부자인 다윗과 
솔로몬의 하나님이기도 했지요. 부자와 가난한 이를 너무 이념적으로 나누게 되지 않느
냐,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냥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 이런 주장도 가
능할 것 같습니다. 어떻습니까?

지성용: 예수가 택한 자발적 가난의 특성이 이기적인 욕망의 포기, 혹은 비움입니다. 예수
님처럼 자발적으로 자신을 비우고 포기하는 삶이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고 가난하게 만들
어진 그 자신이 세상을 올바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영성적인 혜안을 갖는 거죠. 반면에 말
씀하신 것처럼 와 닿는 것이 정말 가난한데도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살피지 않
고 자기 욕심에만 빠져있는,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있어요. 가난이라고 하는 문제를 우리
는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 잘 곳과 일자리 등을 준비하고 베풀면 훌륭
한 신부님, 목사님, 스님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왜 가난할까, 저들이 저렇게 가난할 수밖
에 없을까라고 구조적인 문제를 제기하면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들이 이념의 잣대를 들
이대며 빨갱이, 종북이 아니냐고 하죠. 
교황 신드롬의 주역인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실제적으로 가난한 사
람들에게 복지정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복지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를 올
바로 이해하고 구조적인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 구조가 
변경될 수 있다.”고 하며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주문하죠. 

또한 교황님은 경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해박하세요. ‘자본주의하에서는 파이를 키워야한
다. 키워야 나눠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가진 자들이 말하는 낙수효과를 날카롭게 비판하
세요. 파이가 커져도 결국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정확히 진단
하시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의 구조적인 문제에 접근해 들어가서, 본질을 연구하고, 동참
함으로써 우리가 느끼는 비움과 포기, 또 이기로부터의 해방, 이런 것들을 체험할 수 있
는 영성적인 삶을 종교인들이 지향해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기성종교에 많
은 실망과 한숨을 돌리는 이유는 종교가 애초에 그런 것에 관심이 없고 이미 너무 부유해
졌고, 필요한 부가 아니라 필요 이상의 부에 대해 탐욕을 갖는다는 거죠. 성직자들도 마찬
가지로 필요한 생활의 부가 아니라 그 이상의 부에 대한 탐욕을 가지기 때문에 종교가 사
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지, 필요한 것을 갖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지 않아요. 가톨릭교
회가 종합대학, 대형병원, 사회복지시설의 대형화를 통해 돈을 긁어모으고 탐욕스러운 모
습을 보이니까 사회적으로 지탄이 되고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들이 조심스럽
게 듭니다. 

우희종: 기득권자들은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통해 다른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했다는 것
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것이죠. 거기에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가 앞장섰던 모습 또한 계속 
있어 왔습니다. 종교는 그런 제도나 구조적인 문제를 감추기 위해서 모든 잘못이 각자에
게 있다고 역설하며 끊임없이 개인화 시켜왔어요. 또 한편으로 마르크스나 많은 사회학자
들은 개인의 문제마저 지워버리고 구조적인 문제로만 접근하다보니까 결국 한계에 부딪
혔어요. 특히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가난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살펴보고 제도개
선에 중점을 두고 종교인들이 앞장서야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의 문제를 개선하는 지
적도 종교인이라면 해야 된다고 봅니다. 

류상태: 김근수 선생은 “한국교회는 부자와 권력자편에 서있다.”고 주장한다. 어떻습니
까? 

우희종: 초대형교회가 급속하게 늘어나게 된 이유는 금융실명제가 일익을 담당했다고 봅
니다. 재벌의 돈세탁, 정치자금의 세탁을, 처음에는 복권이나, 마권으로 했다가 결국 초대
형교회의 당회장목사와 협의가 되면 세무추적도 되지 않는, 몇 십억, 몇 백억의 돈 세탁
은 쉽거든요.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의 결탁이죠. 그러면서 또 가진 자들이 나오는 교회에 
얼굴도장 찍으려고 등장하는 신도들도 생기죠, 물론 순수한 신도들도 있습니다. 더 나가
면 개척교회 중에서도 세속적인 부와 권력을 향해서 개척교회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봤을 때 일반화 할 순 없지만 한국교회의 분위기는 김근수 선생이 지적하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지성용: 종교가 부자와 권력자들의 편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지적은 사실 종교가 정
치권력과, 부자들과, 공직사회와의 결탁으로 상당히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어
요. 불교의 경우는 템플스테이를 많이 유치하고 있죠. 템플스테이를 통해 지원되는 국고
가 추산해보면 상당히 큰 액수이고 가톨릭의 경우는 사회복지시설과 성지개발聖地開發
로 지원되는 국고가 적지 않습니다. 국고로 상당히 많은 금액이 지원되는 사회복지시설에
는 최근에 문제가 되는 대구 희망원이나 꽃동네 등이 있고, 성지개발의 경우에도 국고에
서 상당한 액수가 들고 있죠. 대형교회가 행하는 여러 불법과 편법, 여러 이권들을 정부
가 보호해주고 있잖아요. 결국 종교단체가 지금 대형화되고 부자가 되는 것은 사실 정치
권력과 부자들의 협력 없이는, 공직사회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죠. 

또한 이념이나 신앙으로 사람들을 대규모로 모아낼 수 있는 매개는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최상이죠. 교회에 몰려드는 많은 신도들, 또 성당에 오는 미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기
적으로 주일마다 만나서 여러 이야기들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치권력은 종교를 이용하죠. 
특히 정치권력자들은 지금과 같이 선거가 눈앞에 있는 시기에 종교단체에 상당히 많이 몰
려옵니다. 또 선거가 끝난 이후에는 많은 목사, 신부, 승려들이 정치인들을 많이 찾아가
죠. 종교가 돈에 경도되는 시기는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왔던 시점부터 심화되거든요. 
자본이 대형교회, 사찰, 성당에 돈을 갖다 꽂으면 안정적으로 이자를 받아올 수 있는 사업
들이 많이 있죠. 안정적인 PF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하게 되니까 여러 가지 대규모 공사들
을 만들어 내고 대학, 병원을 할 수 있는 규모의 돈들이 들어옵니다. 다 대출을 받을 수 있
어요. 종교재단이 돈을 갖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권에 상당히 많은 대출을 끼고 사
업을 하죠. 결국 그러한 자본들이 종교 안에 침투되고 정치권력이 함께 하면서 종교가 짧
은 시간 안에 더 크게 대형화 되고 권력화 되고 자본과 정치와의 결탁과 밀착이 더 심화되
면서 종교가 제 기능을 잃어버립니다. 부유해지니까 사회적인 예언자적 목소리를 낼 수
도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을 들 수도 없고 결국 부자들의 권력과 정치권력의 이해를 대
변하는 교회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은 유효합니다. 종교가 그동안 정치권력의 돈세탁
을 하는 창구로의 기능을 했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어요. 예전에 MB가 다니던 소망교
회에서 소망교회를 다니는 금융인들이 ‘소금회’라는 모임을 조직했는데 거기서 한국은행
의 이자율을 결정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종교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임계점이 왔다고 봅니다.

류상태: 가난한 자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의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본다면 많은 
문제가 노출될 텐데요. 특히 심각하다고 보시는 것은?

지성용: 우선은 종교시설이 대형화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정권과의 밀착도 상당히 심각
한 문제이고, 자본이 종교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도 놓치지 말아야 될 중요한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매스컴에 가톨릭교회의 문제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었어요. 박근혜 정부 시절 청
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김영한 비망록 에 보면 김기춘은 세례명이 스테파노인 가톨릭 신자
였어요. 김기춘이 언론을 전체적으로 컨트롤하며 가톨릭교회가 등장하는 상당히 많은 부
정적인 뉴스들을 모니터링했다는 내용들이 많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많은 매스
컴에서 가톨릭교회의 많은 부정과 비리에 대해 보도가 되고 있어요. 대표적인 것이 대구 
희망원 사태죠. 대구 희망원은 복지시설인데 거기서 신부, 수녀가 상당히 많은 돈을 횡령
하고 운영을 잘못했다는 등의 문제로 재판을 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어요. JTBC
나 뉴스타파 등을 통해서 대구 희망원 사태에 대한 보도들로 많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개탄하고 “아! 이게 지금 무슨 일인가?”얘기하고 있죠. 

최근에 인천 교구의 성모병원 문제가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되면서 사회적인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고. 이전에는 사랑의씨튼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충주 성심맹아원에서 주희라고 
하는 장애인 아이가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죽었어요. 이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이 안되니
까 주희의 부모들이 청와대 앞에 가서 며칠을 밤낮으로 시위를 하게 된 거죠. 뿐만이 아니
라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서 수녀가 아이를 집어던지는 영상이 공개되어 사회적
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죠. 예전에는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며 윤리와 도덕의 기준이 
됐는데 이제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단 말이죠. 지난 가을, 설정스님이 서울대를 졸업했
다며 학력을 위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조계종의 최고수장인 총무원장에 당선된단 말이죠. 
명성교회, 최근에 JTBC뉴스에 많이 나오죠. 대형교회를 부자간에 물려주는 당회장목사
의 세습과 며칠 전에 장로가 되려고 하는데 삼천만원을 내야한다는 뉴스도 나오죠, 자성
도, 통제가 되지 않는 거죠. 세상이 이런 뉴스를 보면서 교회와 사찰, 성당을 걱정하는 그
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희종: 이런 구체적인 사례는 불교 내부에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어렵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종교를 특수집단으로 생각해서 종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
러 가지 부정과 비리- 돈 선거하고 돈 선거한 증거가 다 있어도 ‘돈 선거는 맞다. 그러나 
그냥 너희 안에서 해결해라.’ 이렇게 되니 완전히 치외법권이 된 거죠. 그러다보니 여러 
문제가 횡행하고, 그러한 것을 목도하면서도 신도들조차 스스로가 ‘그냥 뭐, 그래.’ 하면
서 상식조차 포기하는 이러한 종교문화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지성용: 신도들의 문제도 있지만 많은 종교적인 비리와 문제가 있는데 내부에 있는 성직
자들과 수도자들이 이야기하길 꺼려하는 거예요. 최근에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부의 성희
롱,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검찰 내부가 완전히 뒤집어 졌어요. 그런데 우리가 밖에 있
는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하고 얘기할 때는 관대해요. 예를 들면 쌍용자동차 문제라든지 
여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파이팅할 때는 정의롭다고 하지만, 내부에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회정의를 말하는 분들도 내부의 정의에 대해서는 민감해요, 
말 못해요. 생존과 결부되고 내부고발자가 되기 때문이죠. 혹은 조직에서 왕따가 되거나 
외부로 밀려나게 되죠. 제일 중요한 자성과 쇄신은 각 종단의 성직자들인 승려, 목사, 신
부 스스로 해야 합니다. 

우희종: 그래서 뜻있는 신도들이 가장 실망하는 건 소위 종교지도자들이 예전에도 지금까
지 늘 권력자들과 함께 해왔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밖에서 신도들이 이야기할 때 내부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밖에서는 사회문제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하던 사람들이 내부의 문제
를 오히려 보호하고, 밖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해종害宗이라고 몰아가는 현실을 보면
서 성직자들에게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마저 내려놓아야 시대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합니
다. 

지성용: 불교에서는 스님들을 부처로 모십니다. 개신교나 천주교에서는 신부님들이나 목
사님들이 하느님이고 예수님입니다. 또 수녀님들은 성모마리아입니다. 성직자들을 절대
자와 동일시하는 이런 종교문화가 신도들의 종교의식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성직자들이 가르치기를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순명이다, 순종이다”로 가르쳐 놔서 이 굴
레에서 해방되기 전에는 평신도들의 교회개혁참여는 상당히 요원하지 않을까 생각합니
다.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교육이 필요합니다.

우희종: 이런 개혁의 목소리가 성직자 입에서는 나오지 않을 거고 깨어있는 신도들이 평
신도연대 같은 조직이나 단체를 통해서 끊임없이 펼쳐야 합니다. 

류상태: 문제는 종교에서 이런 흐름을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차단시키고 
억누르고 있습니다. 지금 개신교에도 그런 현상이 많이 있고 구조적으로 퍼져 나가기 어
렵지만 확실히 억누르거나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개신교는 많은 분파로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특정 거대한 통일체가 계획을 가지고 누르고 억압할 수 있는 구조적인 능력
은 없다고 봅니다.
김근수 선생이 가톨릭은 겉으로 볼 때는 괜찮은 것 같고 점잖아서 우리나라 사회에서 존
경을 받는 것 같은데 내부적으로는 성직자 중심주의에서 군국주의 냄새가 난다고 얘기합
니다. 가톨릭은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사제 이런 구조에서 나아가서 사제와 평신도 
간에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요? 

지성용: 가톨릭이 콘스탄스누스 황제를 통해서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 종교의 자유가 
선포되고 교계제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교황을 정점으로 해서 교황, 주교, 사제, 부제라고 
하는 계급구조가 이렇게 2000년 동안 굳어져 왔습니다. 이런 피라미드식 계급구조에서는 
의사소통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정점에 최고 권리를 받은 교황이 있고 그 안에 관리하는 
중간관리자인 주교가 있고 주교 아래 사제가 있고 그 아래 말 그대로 평신도를 배치하는 
이런 피라미드 조직 구성에서는 소통이라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교황을 선출할 때
는 그나마 콘클라베라고 하는 추기경들의 선거를 통해서 뽑아냅니다. 그러나 지역의 주교
를 뽑을 때는 선거라는 것조차 없습니다. 교황청에서 한국에 와 있는 교황대사를 통해서 
눈여겨보고 있다가 후보자를 뽑고 교구장이 추천해서 로마로 보내 그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내려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5년이면 임기가 바뀌는데 주교는 종신입니다. 75세 정년
까지 주교직을 수행합니다. 이렇게 되다보니까 권력을 견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주교의 권
한이 막강한 이유는 사제들의 인사권과 경제권, 신부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
입니다. 신부의 인사발령을 보면 부임지에 한 번 가면 3년에서 5년은 있는데 어느 본당에 
가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가 달라집니다. 지금 제가 있는 본당은 인천교구 124개 본당 중 
재정이나 신도수가 124위입니다. 이런 본당도 있지만 돈과 신자가 많은 본당도 있습니
다. 주교들이 인사발령을 할 때 본인 기호에 맞는 사람들을 여유가 있는 본당에 보낼 수
도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 말을 안 듣고 사이가 안 좋으면 소위 안 좋은 곳으로 보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권을 가지고 사람들을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경영이나 경
제도 전문가들이 모여서 함께 토론하고 합리적으로 논의해서 돈을 쓰면 좋은데 주교의 감
정과 생각에 따라서 “이거 한 번 해보지, 저거 한 번 해 보지.” 해서 보는 손실도 적지 않
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꽂는 것은 소통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구조는 뭔가를 말하
는 구조는 아닙니다. 

본당에 가는 신부들도 똑같습니다. 신부들도 본당에 가서는 신자들에게 주교처럼 군림하
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위적이고 절대적인 신권을 부여받은 사목자인데 그렇게 합니다. 
이 사목이라는 말이 양을 치는 것인데 저는 못마땅합니다. 사목자로서 존재하면서도 구조
의 한계에 묻어가는 것입니다. 교회내의 소통 창구라는 것은 아직까지 요원하고 교회내
의 민주주의라는 그 말 자체도 상당히 불경하게 생각합니다. 교계제도 안에서 민주주의
를 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회에서 계급제도를 철폐하자는 말하고 같은 말이 되어 버
립니다.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고 가톨릭교회 내 사정입니다. 

류상태: 개선될 여지는 없습니까? 찾기 어려운가요?

지성용: 중앙집권화 되어 있는 부분들을 일부 분권화 시키자고 신부들이 문제 제기를 하
기도 합니다. 한 지역을 지구로 나눠서 지구장에게 인사권과 예산권을 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는데 이전까지만 해도 신부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림도 없었습니
다. 그런데 2013년에 선출되신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회를 저 밑에 있는 본당부터 교황
청까지 싹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생각 있는 신부들이 이 기회에 교회를 쇄신
하면 어떻겠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계제도라고 하는 벽이 2000년 동
안 켜켜이 쌓여 왔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고 있지만 시작은 하고 있습니다. 

우희종: 밖에서 봤을 적에는 이런 논의도 기득권자들 간에 서열 싸움으로 보입니다. 수녀
님들의 지위에 대해서는 생각도 안 합니다. 남성 위주의 이익 구조를 좀 더 민주화로 바꾸
느냐의 소통구조일 뿐이지, 이 시대에 맞는, 젠더Gender의 문제가 반영된 가톨릭의 개혁
을 꿈꾸느냐하고는 굉장히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지성용: 여성은 아직 신부가 될 수 없는데 이런 것들을 제기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류상태: 제가 교황님 팬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등장해서 하신 말씀과 행동으로 충격
을 받았고 마치 성서 안에서 예수님이 걸어 나오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
황님 개인은 참 좋은데 동시에 불안한 마음과 아쉬움이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오래 못 버
티실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지금 교황님 말씀에 영향 받아 사제들 중에서도 힘을 내고 
새로운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톨릭 주류가 교황님의 뜻을 
동의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성용: 아주 민감한 부분을 지적하셨는데 실제로 로마의 상황은 개혁적인 흐름들이 상당
히 강화되고 있습니다. 교황께서 제일 중요한 바티칸 은행을 개혁해 버렸습니다. 로마의 
바티칸 은행이 유럽의 돈세탁의 창구였는데 그렇게 운영하던 은행장 대신 개혁적인 인사
를 집어넣으면서 상당히 많은 개혁들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한국천주교회가 교황
님의 말씀을 살짝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황님 관련된 보도가 주교회의를 통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연합뉴스 같은 매체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류상태: 개신교인으로서 단도직입적으로 여쭤 보겠습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적폐일
까요? 

우희종: 전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힘든 자들과 함께 하는 대형교회
가 아니라 기득권을 위한, 그리고 기득권 안에 속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길들이는 구조
로 대형교회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저는 대형교회가 정치집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지성용: 역사적으로 개신교회가 저질렀던 여러 범죄들과 서북청년단의 활동부터 시작해
서 지금까지 보였던 개신교단의 활동들이 정치적으로 한국사회를 보수 우경화시키려는 
개신교회의 조직적인 밑받침이 아닌가 라는 의혹을 갖습니다. 상당히 많은 정치인들이 목
사들을 통해서 정치권력의 힘을 얻기도 합니다. 최근에 더불어민주당의 김진표 의원이 종
교인과세유예 법안을 발의 했다가 지탄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교회의 장로이
더군요. 대형교회가 저지르는 옳지 않은 일들을 보며 너무도 부끄럽고 저 사람들이 예수
라는 이름을 갖고 뭘 하는가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조용기 목사나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
물 종교인들이 저지르는 파렴치한 행각들을 보면서 과연 사실일까라는 의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가 이단이라고 말하는 신천지 교회의 여러 가지 파행들이나 정치적
인 협력들이 보입니다. 전 정부와의 밀착이나 밀월이 기자들이나 시민사회의 추적으로 문
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 종교가 정치적폐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보입니다. 물
론 천주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류상태: 대형교회는 예수의 교회도 아니고, 예수의 조직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대형교회는 “사기꾼과 바보들의 연대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도 그렇다고 생
각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알면서 대형교회를 개혁해 나가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계속 해나간다고 하면 사기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대형교회 안에서 진실로 자기 일
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 사람을 바보라고 봅니다. 진실성은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
만 예수의 뜻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조용기, 김삼환 이런 사람들이 정말로 진실성을 가
지고 저렇게 하는 것이냐 생각하면 진실성을 가지고 할 수 있다고는 봅니다. 그런데 그게 
바로 2000년대에는 그 세뇌에 분리해서 빠져나올 생각을 못해서 그러는 것입니다. 

우희종: 그들은 예수님 팔아서, 부처님 팔아서 돈 버는 장사치들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런 
것을 말할 때 지혜를 드는데 지혜가 없이 무조건 저 말이 맞아 하며 굴종하는 이런 자세
에 대해서는 장사꾼들에게 노예화 되었다고 합니다. 장사꾼들과 노예들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류상태: 그런 노예들이 목사님들 중에 많이 있다는 겁니다. 아마 신부님들 중에는 그런 분
들이 상대적으로 적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개신교는 워낙 중구난망으로 엉터리 신학교도 
너무 많아서 여러 가지로 문제입니다.

지성용: 천주교도 똑같습니다.

우희종: 큰 종교집단이 정치집단화 되다 보니까 더 이상 종교의 장소나 문화 자체가 예전
의 소도와 같이 잘잘못에 따라서 자기 몸을 의탁할 피신처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런 곳
으로 대표적인 곳이 명동성당과 조계사였는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왔을 때 그를 
내 쫓은 자들이게 조계사 승려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 시대의 종교는 이제는 정
치의 한 집단으로서 사회의 하나의 돈벌이 장소지, 더 이상 진정한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
달하고 구현하는 집단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지성용: 그런데 대형교회에서 열심히 하는 목사님이 있는 것처럼 우리 천주교 안에도 정
말 열심히 사시는 많은 신부님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불교에도 수도 생활하는 명진 스
님과 도정 스님을 만나 뵈었는데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종교권력
을 쥔 사람들, 상층부로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종교의 수장이 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 올라갔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에 조계종 총무
원장 설정 스님에 대한 비판들이 많았습니다. 누가 이 사람을 여기다가 올려놓았을까, 아
니면 스스로 올라갔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전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도 마찬
가지입니다. 

우희종: 승려들이 올린 것입니다. 

지성용: 저희 한국천주교도 추기경님을 보면서 하는 얘기가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림자
도 못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존재감이 없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우희종: 모자라다는 것의 기준이 좀 명확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분들은 세속적으
로 능력이 있는 분들입니다. 다만 종교인으로서 진정한 능력은 모자라는 분들인 것입니
다. 종교집단이 그런 면에서 정치집단화 되다 보니까 세속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위로 올
라가는 것 같습니다.

류상태: 예수님의 정신 중 가장 큰 정신은 저항정신입니다. 개신교 자체도 저항이고 프로
테스탄트는 저항하는 사람들인데 지금은 저항하는 사람들이 내쳐지기 쉽고 조직 안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희종: 저 스스로 저항하는 자들의 숙명이 아닐까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드리고 있습니
다. 

류상태: 조계종단이 여러 가지로 비판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재가불자님들이 애
를 많이 쓰시고 힘을 모으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명진 스님 제적 사건을 비롯해 여러 가지
가 의혹들이 많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재가불자들이 나서게 되었는지 간단하
게 소개 좀 해주십시오. 

우희종: 워낙 많아가지고 다 소개하기가 어렵습니다. 운동과 한계를 잠깐 말씀 드리고 사
례를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한국불교는 선종을 표방합니다. 선종은 간화선看話禪을 표
방하는데 한국불교 안팎에서 인정하는 송담 스님이 갑자기 “야~ 이거는 아니다.”라고 하
면서 갑자기 탈종 선언을 합니다. 평소에 많은 불자들이 ‘어느 집단이나 비리가 있구나.’ 
생각은 했지만 송담 스님이 갑자기 탈종하니 ‘우리 종교도 뭔가 특별한 것이 있나?’하고 
들여다보게 되면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조계종의 위에 있는 분들이 자기 말을 잘 듣는 
승려들을 목이 좋은 사찰에 주지로 보내는 것은 약과고 본사 주지를 뽑는 선거가 엄청난 
돈이 왔다 갔다 하고 심지어 자기편이면 처자식이 있는 사람조차 본사 주지로 임명하고 
절을 팔아먹고, 해외원정도박하고, 성폭행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 것 때문에 신도들이 모여서 “아~ 이것은 아니다.” 했지만 조계종 종단 내부는 자정
능력이 없고 더욱이 조계종단을 위해 변명 하는 승려들, 특히 도법 스님의 경우 참담합니
다. 최소한 밖에서 목소리를 낼 때 안에서 뜻있는 승려들이 호응하면 그래도 변하지 않겠
냐 해서 작년 내내 재가불자들이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설정 스님이 총무원장이 되
는 과정처럼 개혁의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당하고 내부의 승려 목소리도 잠시 있었지만 그
것 역시 권력을 가진 종단 내부의 핵심층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계
를 봤는데 그게 뭐냐면 재가자들이 문제를 제기해놓고 스스로 조계종 종단의 승려들의 나
쁜 점을 닮아가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재가운동에 약간의 과도기가 왔습니다. 
동국대학교 총장으로 보광 스님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조계종단의 노골적인 개입이 있었
습니다. 그리고 보광 총장이 논문을 표절했는데 단순 표절이 아니라 다른 분의 박사 학위 
논문에 이름만 바꿔 제출한 것입니다. 증거도 명백한 사실인데 그 박사학위를 지도했던 
동국대학교 교수가 자기 제자 논문을 왜 표절했냐고 한마디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안하고 입을 닫고 미국으로 도망갔던 사람을 시간이 지나니깐 “그때 보광을 지지는 안했
잖아, 훌륭한 사람이야.” 이러면서 다시 데려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내부에서 문제 제기되
고 단식하고 입장 표명을 요구하지만 무시되고 또 그쪽에서 역공으로 재가단체의 문제를 
지적하면 이 재가단체도 외부의 그런 지적에 대해서 그 지적이 사실이니까 침목으로 대응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최소한 “맞다, 우리가 개선하겠다.” 는 입장표명이 없고 하는 
것을 보면서 실질적인으로 재가운동 내부에서 싸우면서 닮는 게 좀 있었습니다.

류상태: 니체가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과 비슷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 라는 말을 했
습니다.

우희종: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불교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을 강조하니 늘 생각하
면서 해야 되는데 그게 안 되어서 동력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류상태: 우 교수께서는 ‘바른불교재가모임’ 만드시고 지금도 대표로 계시지요? 이런 일들
을 개혁하자고 만들었을 텐데 어떠십니까? 거대한 철옹성 같을 텐데 그래도 좀 개선될 여
지가 보이나요? 

우희종: 결과 위주로 바라본다면 답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최소한 저희는 과정이 곧 
우리들의 자세라고 보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되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될 거라 
생각하고 꾸준히 가고 있습니다.

류상태: 우문현답입니다. 오늘날 종교가 전반적으로 사회의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
니다. 심지어는 종교가 차라리 없어지는 것이 낫지 않느냐 하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러면 
두 분은 어떠십니까? 현대사회에서 그래도 종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만약에 
그래도 꼭 있어야 된다면 현대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기대하기에 아직까지도 종교가 있어
야 되는지, 아니면 없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면 솔직하게 왜 없어지는 것이 나은지
를 얘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우희종: 저는 이 시점에서 일단 종교라는 틀과 종교적인 메시지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기존의 종교적인 틀은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몇 천 년 동안 내려온 예
수님이나 부처님의 메시지는 결코 앞으로도 우리들이 충분히 받아들이는 지점이기 때문
에 결국 그것을 어떻게 살려내느냐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전에는 노예가 있었고 여성은 
인간취급도 못 받다가 이제는 인공물조차도 하나의 인간과 대등하게 판단하고 자율적인 
기능을 가진 존재로서 등장할 시점이죠. 포스트휴머니즘시대에 종교가 존재할거냐는 질
문에 맞닿는다고 봅니다. 그러면 여기서 한 번 우리 종교가 찾을 수 있는 것이 뭔가, 종교
적인 메시지가 기존의 종교틀이 담지膽智해왔던 역할을 생각해볼 때 이제는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는 우리들의 감각기관에서 만든 이성
과 감성이 그것을 만들어 내는 우리들의 몸이 세상의 모든 주파수를 보는 것도 아니고, 듣
는 것도 아니라면 제한된 관찰자로서 형성된 우리들의 인지 기능으로 이 세상을 다 이해
하고 말한다는 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습니다. 인간이 그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면 우리들
이 인지하고 좁은 세상을 비록 나는 여기 있지만 지금 이 자리를 이 좁은 시각으로 다 이
해할 수 있다는 인간적인 오만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다면 초월적인 영역은 늘 우리에게 
상존하고 유한한 존재로서 그 지점에 대한 것은 저는 시대가 변해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
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우리의 초월적 지점을 다루는 영적이라고 해도 좋고 그런 지점을 
분명히 보여주는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유효할거라 봅니다. 아마 그것을 어
떠한 형태의 그릇으로 어떠한 틀로 제시할 것인가는 앞으로 더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싶
습니다. 다만 지금의 종교적 틀은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성용: 저는 두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해서 초월에 대한 문제를 마지막에 결어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함석헌 선생께서는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 체제, 종교는 기득권층이 생
기고 그 기득권층은 민중의 아픔을 풀어주고 수렴하기 보다는 억압한다. 그 중에서 종교
권력이 가장 심하다. 한국기독교 역사의 격동기에서 긍정적인 일도 많았지만 종교권력은 
정치권력보다 더 오래 가고 한 민족의 정서에 밀착하여 우매한 국민을 만들고 민주주의
를 외치면서 종교 자체는 민주주의를 멀리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가 나누는 모든 이야기 종교들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들의 핵심을 일찍이 지적하셨습니
다. 
저는 상당히 유의미하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종교와 종교 메시지를 좀 구별해야 할 필요
가 있다는데 공감합니다. 사실 이 틀이, 제도와 규율이 오히려 더 종교적이지 못한 경우들
이 많이 있었습니다. 제도가 교회가 사찰이 성당이 오히려 종교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
는 경우가 오히려 많습니다. 그런데 메시지는 유효합니다. 부처님이 하신 말씀과 예수님
의 말씀은 지금도 상당히 유효한데 그것을 운용하는 제도와 규칙과 규율, 틀들이 상당히 
낡은 부대라는 것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되는데 술을 오래된 부대에 담다 보니
까 지금 자꾸 뭔가 걸려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겁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께서는 “이제까지 추구한 게 의미가 없으면, 소리 없이 버려야 한다. 
10년을 쌓았건, 20년을 쌓았건 그게 모래성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허물 줄도 알아야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 오면서 이 두 어르신의 말씀을 적어서 왔는데 사실 종
교의 영역에서 초월이라는 말을 상당히 곡해하고 있습니다. 초월이라는 말은 일반인이 이
해할 때 시간과 공간을 벗어나는 어떤 미지의 영역, 미지의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 초월transcendent이라고 하는 말의 어원은 실제로 '문
제의 핵심에 가다, 본질에 가 맞닿다'라는 의미입니다. 벗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그 
문제와 그 문제의 중심으로 가는 것이 초월이지 이 문제를 벗어나는 게 초월은 아닌 것입
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인들 특히 보수종교인들이 하는 얘기가 “좀 초월적인 삶을 살아
라, 세상에서 아옹다옹하는 문제에서 벗어나서 살아가라.” 이런 말을 분리된 형태로 하는
데 그러나 예수님은 김근수 선생이 지적하신 것처럼 세상 시정 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
든 잡스런 것들까지도 다 이해 하시고 아시면서 그 판들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현
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의 문제를 몰랐던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의 종교는 너무나 현실의 문제를 잘 모릅니다. 신부님, 수녀님, 스님, 목사님
은 우리식대로가 아니라 자기식 대로 현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
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월세를 내면서 힘들어 하는지, 난방이 되
지 않아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는 사실 모르고 있습니다. 초월이라고 하
는 의미에 올바른 정의는 이 문제로부터 회피하거나 도망가거나 외면하거나 무시하는 것
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꿰뚫어보고 또 넘어서서 볼 수 있
는 그 말대로 영적인 시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유효합니다. 지금의 종교의 시대
가 변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것이지 종교가 무용하다고 생각하지 않
습니다. 이 시대에 맞는 종교적인 변화를 틀의 변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 지금 종교인
들의 과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류상태: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지금 잘난 것처럼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저도 제대로 된 종교인의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쫓겨난 다음에 아닌 것처
럼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하
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희종: 저는 종교는 사회를 짝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말씀이 2500년 전이
고 예수님 말씀이 2,000년 전에 있었습니다. 과연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지만 예수님, 부
처님 말씀대로 이 사회가 과연 얼마만큼 변하였습니까? 그 두 분의 말씀이 없으셨다면 지
금 인간세상이 얼마나 더 나빠졌을까요?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도대체 이 종교를 좋
아하는 입장에서 이 역할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 그게 바로 소금의 역할
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소금의 역할을 넘는다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착각을 합니다. ‘내 종교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할 거야.’면서 오만하게 했을 때 오히려 사
회는 소금에 쩐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짝사랑의 대상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내고 잘되
기를 바라야지, 좌지우지하려고 개입할 때 월권이 되고 우리 사회를 피폐하게 만듭니다. 
그게 현재 종교의 모습이 아닐까요? 그런 모습에서 예수님의 말씀이나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진정한 소금의 역할이 무엇인지 끊임없는 성찰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성용: 제 입장에서 가난하지 않은 성직자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어려
웠습니다. 실제로 성직자들이 정의의 편에 있다고 해도 성직자들은 부유합니다. 자기 먹
고사는 문제든지 노후를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우리를 말 그대로 틀에 가
두어 놓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는 저에게 큰 숙제입니다. 그리고 종교
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특히 직업종교인이라는 말을 들을 때 저희에게는 치명타입니다. 소
명으로 살아가는데 직업인으로 취급받을 때는 참 힘듭니다. 잘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다
시 하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서 많은 얘기들을 공감했고 그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
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렇게 작은 밀알들이 자라서 더 좋고, 더 많은 열매를 맺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가지면서 이 자리를 마감하고 싶습니다. 

류상태: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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