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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권 135호【특집】『 동성애,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 』 - 편집부 -
<<대화>>

동성애,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


박진영: 로뎀나무그늘교회 담임목사
유동식: 로뎀나무그늘교회 교인 
류상태: 종교작가

류상태: 오늘 대화 주제는 동성애입니다. 얼마 전에 육군본부 보통군사법원이 육군대위에
게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 24일에 한동대에서 총장, 부총장, 교목실장, 
학생차장이 “동성애와 동성애 결혼에 대한 한동대학교의 신학적 입장”이라는 선언문을 
발
표했습니다. 그 다음날 학교 측에 동조하는 학생동아리에서 “동성애 바로알기”라는 제목
의 특강을 주최하자, 이에 대해 반대의견을 가진 학생들이 피켓시위를 벌였습니다. 그 다
음날 5월 25일에 감리교에서 ‘동성애대책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설립목적을 “동
성애자들을 혐오하고 정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계몽하고 회개토록 함으로써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근 우리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동성애 문제가 정말 사회의 문란행위인지 아
니면 존중받아야 될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 문제인지 함께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박진영: 동성애 성소수자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잖아요. 그렇다면 그들을 알려고 하고, 
이해하려 하고, 함께하려 하기보다는 나하고는 다르고 삶의 태도가 틀리다는 선입견을 가
지고 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
이죠. 그런데 ‘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답답하고 슬픈 일이고 그렇기 때
문에 ‘저희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참 많겠구나.’하고 책임감이 커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동식: 육군대위가 구속되기 전에 군인권센터와 함께 기자회견에서 “군대에서 불법적인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말하고 그의 변호인은 “기획수사가 이루어졌으며, 배후에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있으며 그는 개신교 장로에다 한국기독군인연합회 회장으로 자신의 종교
적인 신념으로 수사를 좌지우지 했다.”고 합니다. 저는 군을 제대했고 조만간 민방위도 끝
나지만 이 소식을 듣고 처음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어요. 제가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이 사
건으로 성소수자를 구속하고 억압할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과 이후의 올 파장에 대해
서 두려움이 앞섰고, 또 하나는 제 주변의, 교회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 중에 이
미 군대에 있는 친구들도 있고, 곧 가야 할 친구들도 있어요. 이 친구들이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을 생각하니까 굉장한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두려움이 시간이 지나
니까 분노로 변화되더군요. “우리가 이렇게 화가 났다, 우리도 이렇게 화를 낼 수 있는 존
재고 사회에 숨어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계속 국
방부 앞에서 금요일마다 ‘육군대위 석방을 위한 촛불문화제’를 진행했어요. 그때마다 참
가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분노와 걱정과 여러 의견들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힘
을 얻고 용기를 얻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분노는 한편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또 한
편의 두려움도 남아있고. 다행인지 최근 정권도 바뀌었고 사회적으로 분위기가 조금씩 바
뀌어 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어서 이후를 기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걱정과 분노가 
앞서는 것 같습니다.

류상태: 동성애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동성애를 여러 가지 사회적인 영향이나 개인적인 생
각과 행위의 결과물이니 그걸 고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동성애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고 선천적인 것이라고 보는 입장도 있는데 어떻습니까?

유동식: 제가 유전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고 의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과학적인 근거
를 내세우고 그것을 통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다만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소수자로,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정립하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을 말씀드리면 처음 
성 정체성의 자각을 느꼈던 것은 19세 때였어요. 20세 이후에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이 왔
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모든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거나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것은 아니
라서 어쩌면 내가 게이가, 성소수자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 거죠. 제가 군대에서
는 함께 생활하는 동료들에게 성적인 끌림을 느끼지 않았어요. 이 시기를 거치면서 ‘어쩌
면 내가 성소수자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그 뒤부터는 계속 여성들과 
교제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20대 후반 즈음에 저도 모르게 제가 함께 일하던 동료 한분을 
좋아하게 됐는데, 처음에는 ‘우정보다 더 깊은 무엇이겠지’ 라고만 생각하다가 ‘아! 이게 
어쩌면 진짜로 사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이전에 여성들과 사귀면서 나눴던 
사랑의 감정하고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굉장히 강렬한 끌림이었던 거예요. 그때 굉
장히 혼란스러움을 느꼈고, 30대로 넘어오면서 제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좀 많이 힘들
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그 당시 저의 신앙을 바탕으로 봤을 때도 이건 너무나 부딪히
는 일이기 때문에 어렵게 다가왔었거든요. 그래서 그때의 저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
던 사람이었다가 나 스스로가 변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이게 불가능하구나.’ 라는 것
을 깨닫고 제 정체성을 확신하게 된 거였거든요. 지금 말씀드린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 다
수의 성소수자 분들이 겪었던 이야기입니다.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가 인정받을 수 없고 
삶이 너무나 힘들고 고달프고 계속 숨어 지내야 해요. 그래서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자리
에서 “내가 바뀔 수 있다면 나는 바뀌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왜냐하면 성소수
자로 사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근데 바뀔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힘든 삶
을 살겠다고 스스로 결단하는 거죠. 그 만큼 이게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니다 라는 
것이죠. 의학적인, 인류학적인, 심리학적인 여러 분석을 통해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은 먼저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하고 그들이 “나는 변화될 수 없다.” 라
는 목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단 제가 그랬고요. 그래서 저는 자신 있
게 이것은 절대 후천적일 수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박진영: 제가 만나고 상담하는 성소수자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대체로 다 비슷해요. 
대부분의 성소수자 분들은 일단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사는 것을 너무 힘들어 해요. 그리
고 교회에서도 동성애를 정죄하니까 일단 이성애자가 되려고, 안되면 이성애자로 적응해
서 살려고 노력하는데, 열심히 노력 해도 되지 않는 그런 감정과 노력해서 바뀌지 않는 것
을 정말 많이 경험을 하는 거죠. 누가 힘들게 사는 삶을 굳이 선택하겠어요?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까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야 편안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데 이걸 계속 부정하게 되면 그 스트레스가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
에 사람들에게 비록 커밍아웃하지 않고 숨길지라도 ‘그냥 내 자신을 잘 받아들이자, 이게 
바로 신이 나에게 허락하고 신이 나를 이렇게 만든 나라는 존재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
을 인정하자.’고 했을 때 오히려 더 편안한 것을 느끼게 되고 그때에 비로소 하나님으로부
터 존중받을 수 있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렇지 않고 동성애를 전적으로 본인이 선택했다고 하는 것은 굉장히 왜곡된 시선
인거죠. 

유동식: 기독교에서 동성내자가 이성애자로 바뀔 수 있지 않은가? 그런 케이스의 사람이 
있지 않느냐며 실제로 몇몇 분들이 그런 신앙 간증도 하시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
도 그런 분들을 보면서 스스로 고민을 해봤어요. 혹시 저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의 부족
함 때문에,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라고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
데 저 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성과 정체성을 확신하는 과정까지의 여
정을 생각을 해보니 충분히 오해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한국사회
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는 남자다워야, 여자는 여자다워야 함에 대해 교육을 받거든
요.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중에 주입되어진 천편일률적인 정체성 때문에 내가 정말
로 어떤 사람인지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는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거든
요. 저도 이성애자처럼 여성들과 사귀고 그런 관계를 갖다가 나중에 확신을 가지고 게이
라고 저 스스로를 표명하게 된 것처럼 저의 삶 속에서도 사실 이성과의 관계도 있었고 동
성과의 관계도 있던 거잖아요. 근데 이거를 객관적으로 내가 했던 행위들만 놓고 봤을 때 
“어! 너 여성과도 결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 지금 네가 선택하고 네가 드러내
고 있는 너의 정체성이 잘못된 것 일수도 있지 않냐?”고 하시는데 저의 정체성을 찾아가
는 여정이었던 것이지, 이것 자체가 저를 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것
은 절대 아닌 겁니다. “나는 한때 성소수자였는데 지금은 변화되어 이성애자로 살고 있습
니다.”라고 말을 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은 것이 그분들이 원래부터 양성애
자였는지 아니면 본인이 동성애 성소수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삶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서 스스로의 감정이나 욕구를 누른 상태에서 이성애자처럼 살아가는 것인지를 묻고 싶고 
또 그렇게 변화되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그렇게 본인 스스로를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런 케이스조차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
중의 한 모습일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기독교 내에서 변화 가능성을 주장하는 여러 근
거 중에 이 부분은 굉장히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류상태: 일반적으로 ‘동성애는 자연의 흐름이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냐?’ 또 기독교
권에서도 ‘자연의 흐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박진영: 정말 많은 식물군과 동물군에서 동성애가 표현되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연의 흐
름을 거스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얘기죠. 동성애를 반대하는 자기들에게 동성애는 
익숙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우니까 그냥 자연스럽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뿐이죠. 그리고 하
나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말하는데,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죠? 그렇다면 일부 기독교
인들이 주장하는 성서에 쓰인 구절, 구절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성서 전반에 흐르고 
있는 가치관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성서에는 정말 다양한 얘기가 있
잖아요. 폭력과 노예제도에 대한 긍정도 있고, 여성에 대한 억압 등 우리가 수긍하기 힘
든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전부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하나님의 뜻은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비롯된 자연과 인간, 그리고 생명에 대한 사랑에 있다
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랑의 법이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인데 이것을 무시하고 성
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본질을 훼손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고 생각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면서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를 정죄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류상태: 공동번역 레위기 20장 13절은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
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그들은 피
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공동번역 로마서 1장에는 “인간이 이렇게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끄러
운 욕정에 빠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정상적인 성행위 대신 비정
상적인 것을 즐기며 남자들 역시 여자와의 정상적인 성관계를 버리고 남자끼리 정욕의 불
길을 태우면서 서로 어울려서 망측한 짓을 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 그 잘못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받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정말 솔직하게 짚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
요.

박진영: 우선 동성애와 동성 성행위는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동성애자가 아닌 사람들도 
동성 성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요, 동성애자일지라고 성행위를 하지 않는 분도 있거든
요. 그냥 동성 성행위 자체를 동성애라고 등치시켜서 보는 한국기독교의 시각이 동성애자
에 대한 너무 많은 편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기에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
해요.
레위기 20장 13절이나 로마서 1장의 이런 몇몇 구절이 우리들에게 와서 걸림돌이 되는데 
성서시대만 하더라도 동성애가 문제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성서의 모든 기
록들이 동성애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동성 성행위를 이야기하는 것이거든요. 방금 읽어주
신 것도 다 성행위에 관련된 것이잖아요. 그런데 그 성행위가 동성 간의 성행위라고 했기 
때문에 동성애라고 지칭하잖아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너무 무지하세요. 무
지하기 때문에 동성 성행위를 그냥 동성애로 등치시키는 거지요. 동성애라는 것은 누군가
에게 애틋한 감정, 사랑하는 감정, 가슴이 뛰는 감정의 대상이 이성이 아닌 동성인 것입니
다. 이런 감정이 동성애입니다. 어떤 문란하고 타락한 성행위를 동성애라고 생각하는 것
이 잘못된 거죠. 한 번도 성경험이 없는 동성애자들도 정말 많아요. 이런 분들까지 성도착
자 취급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동성 성행위는 거의 힘센 자와 약자 사이의 성적 결합으로 사랑으
로 비롯된 관계가 아닌 성폭행이나 성매매로 볼 수 있어요. 레위기 당시에 여성은 지금 현
대사회처럼 남성과 인격적으로 동등한 관계가 아닌 남성의 소유물이었단 말이죠.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한다고 했을 때 이 동침한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알 수
는 없어요. 만약에 이성애자가 아내가 있는데 그 아내를 놔두고 다른 남성과 자신의 욕망
을 위해서 성관계를 가진다면 이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거든요. 근데 여기에서는 동성애자
가 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행위만을 묘사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군대나 감옥같이 동성들
만 있는 집단 안에서 벌어지는 성폭행의 경우 가해자가 동성애자들이 아니라는 거죠. 최
근 기사에서 헌병대 성폭력을 담당하시는 분이 “가해자의 대부분이 다 이성애자다.”라고 
말했어요. 그것은 우리가 동성애에 대해서 얼마나 오해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해
요. 이성애자가 자기의 욕망과 자기의 욕심 때문에 다른 동성을 착취하고 강간하고 이 모
든 것을 성서에서 금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무분별한 성
행위를 성서에서 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성애자들 중에서도 무분별한 성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동성애자들 간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렇지 않거든요. 

유동식: 많은 분들이 성서를 잘못 해석하는 것에 대한 이유가 있다면 너무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이유로 본인의 정체성을 성소수자라고 
스스로 정체화 하고 있는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는 채 그냥 사회적으로 흩어져있는 여러 편견에 가득 찬 정보들을 중심으로 
성서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류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성서에서 분명하게 동
성애자들을 정죄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들을 정확하게 동성애 혐오로 발전시키려고 하
는 기독교 내의 해석의 입장들을 저는 오히려 성소수자들을 정죄하려 하기보다 자신들의 
잘못을 덮으려고, 또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고 하는 정치적인 의도로, 또는 국면전
환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류상태: 성서라는 책 자체가 이천년 전, 삼천년 전에 그 시대에 살던 사람들이 쓴 것이고 
저는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생각하지, 성서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
지 않습니다. 성서에도 쓰레기들이 많이 있어요, 저는 쓰레기를 봅니다. 예를 들면 선지
자 엘리사가 대머리였어요. 그래서 어린아이가 대머리 아저씨, 대머리 아저씨하고 놀렸
죠. 그런데 성서를 보면 선지자 엘리사가 화가 났는데 하나님이 곰을 보내요. 그래서 곰
이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마흔 두 명, 마흔 세 명인지의 어린아이를 다 찢어 죽입니다. 
그리고 성서는 이것을 옳은 것으로 평가해요. 저는 이 부분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
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저는 성서를 찢을 것이고 완전히 결별할 것입
니다. 그러면 누가 그 쓰레기를 가져왔느냐? 이걸 통해서 뭔가 유익을 얻는 자들, ‘자꾸 나
에게 대드는 게 싫어, 나도 잘못할 수 있지만 입 다물어.’ 라는 말을 하고 싶은 누군가가 
끌어 왔을 겁니다.‘ 조용기 같은 종교지도자들이 성서에 끌어 왔을 거예요. 그런 쓰레기들
이 많다고 봅니다. 성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려들으려면 성서 전체를 통째로 용광로
에 집어넣고 펄펄 끓여가지고 불속에서 쓰레기를 다 걸러내고 남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라고 봅니다. 제 견해일 뿐입니다. 

유동식: 퀴어축제를 진행할 때 부스를 열면 굉장히 동성애를 혐오하시는 분들이 저희 부
스에 많이 와서 딴죽을 걸고 이의도 제기하고 인증도 하고 그러는데 그때마다 저희가 항
상 했던 얘기가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고 그렇게까지 아주 큰 
죄악이라면 왜 예수님은 동성애에 대해서 한 번도 언급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렇게 고
민해 본적이 없냐?”고 질문을 하면 다들 대답을 못하세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동성애를 
부정하는 언급조차도 하지 않으셨거든요. 오히려 더 큰 사랑과 더 깊은 인간에 대한 이해
를 본인이 몸소 실천하셨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던 모습을 보이셨지, 그들을 혐오하거
나 정죄하는 말은 하지 않으셨거든요. 오히려 예수님이 강하게 정죄했던 것은 유대인 지
도자들이었던 거죠. 

류상태: 동성애자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경우 이 아이들이 친
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거나 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유동식: 동성애자 성소수자가정에서 부모가 둘 다 성소수자인 경우인 자녀들에만 해당되
는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요즈음에는 유전자검사를 하니까 임신상태에서 태아의 성별
도 알 수 있고 장애여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도 출산하는 부
모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가 세상에 나왔을 때 겪게 될 어려움과 고통과 아픔을 예상하면
서도 아이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존중 때문에 아이를 출산하는 가정들이 많아지고 
있고 그런 현상이 기독교 안에서 더 많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기독교가 생명
에 대한 존중을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겪고 당하게 될 인권 침해의 여러 상황들을 놓고 본다면 그 부모들에게 그 아이에게 그런 
여건을 만들게 한 책임이 있는 거 아니냐고 하는 질문으로도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게 동성애자 성소수자가 부모인 자녀들에게만 해당되는 질문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데 이 사회는 그렇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이 부모들이 자녀가 힘든 상황을 겪을 수 있음에
도 불구하고 자녀를 갖고자 하는 것을 욕심, 욕망, 욕구로만 볼게 아닙니다. 아이가 겪게 
될 인권침해 상황들과 부모가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이 겪게 될 차별과 억압의 
상황들을 문제시해야 되는 겁니다. 그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사회구조적으로 노력을 
해야 되는 게 맞지, 사회가 이러니까 “너희들이 맞춰서 살아!”라고 주장하거나 강조할 수
는 절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의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녀를 갖고 싶어 합니다. 단순히 나의 족보를 만들고 나의 
뿌리를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가정을 이루고 싶은 겁니다.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
체를 이루고 싶은 마음 때문에 자녀를 갖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하나같이 
어려워하는 게 내가 자녀를 가졌을 때 ‘이 아이가 혹시라도 나 때문에 피해를 당하면 어쩌
지’ 라는 고민과 아픔입니다. 저도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이런 상황 때문에 주
저하는 게 사실입니다. 그 아이를 한국사회에서 키우는 것은 아이에게 못할 짓인 것 같고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을 닫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우리들이 갖고 있는 
이런 죄책감 또는 어려운 마음들조차도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서 이 사회제도를 바
꿔 나가는 노력으로 승화시키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
려 동시적인 노력을 우리 성소수자들이 먼저 해서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녀도 갖
고 이 자녀가 갖게 될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같이 맞서 싸우고 함께 노력하면서 이 사회
를 바꾸어 나아가는 쪽으로 오히려 우리가 더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두렵고 주저하고 
무서워서 후퇴하는 게 아니라 나가야하는 마음이 요즘 들어 더 생겼고 그런 얘기들을 주
변에서 더 많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핵심은 성소수자 부모에게 있지 않고 사회구조적인 
모순에 있는 거고 그래서 그걸 바꿔나가는 노력을 해야 되는 거지, 성소수자 등의 부모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박진영: 성소수자 자녀가 인권침해를 당할 소지가 있다는 질문 자체나 이런 의문 자체가 
실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얘기가 나오는지 아니면 그냥 일어나지 않은 것을 두려워서 미
리 걱정하는 건지,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은 구분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은 편견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편견에서 두려움과 걱정이 오는 거지, 실
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자녀의 인권문제는 사실, 이성애자
인지 동성애자인지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인격과 사회의 인식이 중요합니다. 다양성을 존
중하지 않는 사회, 친구의 부모가 우리 부모하고 다르기 때문에 친구를 왕따 시키는 사회
적 분위기, 저 친구의 엄마는 외국 사람이네, 부모가 가난하네, 부모에게 장애가 있네, 이
런 것 때문에 아이를 차별한다면 차별하지 않도록 장치를 마련해주는 학교의 교육과 시스
템, 우리 사회의 합의 같은 게 필요합니다. 한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장치가 전적
으로 부모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또 그 
부모를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는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이 질문을 우리 안에서 먼저 해야 
되는 게 저는 맞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혐오를 거둬들이는 게 먼저라고 저
는 생각을 합니다.

유동식: 현재 부모들의 삶의 조건 때문에 아이들이 따돌림을 당하거나 인권침해를 당하
고 있는 경우는 너무도 많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난 때문이라든가 장애 때문이
라든가 이혼 가정이라든가 이런 인권침해들은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부모가 단순히 성소
수자가정에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부모의 조건 때문에 사회적으
로 겪게 되는 폭력을 문제시해야 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류상태: 이야기를 쭉 들으면서 든 생각이 동성애자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게 되면 더 
잘 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많이 생각하고 책임성이 있고 그런 가운데서 이루
는 가정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더 잘 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주제로 
동성애자가 에이즈의 주요원인이라고 끊임없이 계속 얘기하는데 말씀 좀 해주십시오.

박진영: 에이즈라는 것은 바이러스 때문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 전염 
경로가 혈액과 정액과 질액입니다. 수혈이나 성관계로 전염이 되는 것입니다. 땀이나 침 
이런 것으로 전염이 되지 않습니다. 성관계나 수혈로 전염되니까 이게 동성 간에 성관계
를 하면 없던 바이러스가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
는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없는 사람들끼리 성관계를 가지면 안전합니다. 바이러스가 있
는 사람이 없는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을 때 안전하지 않고 그러면서 콘돔을 사용하지 않
고 성관계를 가지게 되면 감염 확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사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에
이즈의 원인은 콘돔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에이즈에 걸리면 “그 사람을 혐오해도 되는가? 그 사람을 차별해도 되는가? 그 사
람을 괴물 취급해도 되는가?”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감염인은 환자일 뿐입니다. 돌봄과 
보호가 필요한 환자인데 기독교인들이 유난히 에이즈환자를 ‘죄의 결과 때문에 걸렸다.’ 
라고 평가를 하고 그 사람들을 정죄하는데 성서를 보면 예수님이 질병을 가진 자들을 대
하는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에이즈 감염인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확연하게 드
러납니다. 예수님 당시에 문둥병 환자들은 죄의 결과라고 사회적 통념상 죄의 결과로 받
아들여졌는데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만지고 고쳐주었습니다. 이게 바로 예수님이 전한 사
랑입니다. 우리사회 안에 에이즈를 혐오스러워 하는 그런 흐름을 깨고 먼저 이 사람들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 이게 바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해야 되는 일인데 지금 그렇게 하
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HIV 감염인 환자 대해서 내가 예수의 마음으
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합니다. 그러면 에이즈에 대한 혐오, 동성애에 대한 
혐오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동식: 과거의 역사를 봤을 때 동성애자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특히 남성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에서 에이즈에 대한 발병률 또는 그 전염율이 좀 높았던 때가 분명 있었습니
다. 특히 미국 같은 경우는 1980년대가 그랬는데 그때 굉장히 많은 성소수자들이 에이즈
로 죽었습니다. 

류상태: 왜 그랬을까요?

유동식: 동성애 성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폐쇄성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사실 성소수자
들은 성관계를 성소수자들과만 가집니다. 이성애자들하고는 성관계를 잘 안 가집니다. 아
니 못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폐쇄된 커뮤니티이고 사회적으로 표면 위로 나와 있지 않
았던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어떠한 질병이 침투해 들어왔을 때 그 질병이 확산되는 속도
는 빠를 수밖에 없고 그게 또 그 커뮤니티 내에서 한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기도 합니
다. 한국 성소수자커뮤니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성소수자들 보다 남성
성소수자들에게 더 많이 감염이 되었던 것입니다. 남자들끼리 섹스를 하면 무조건 에이즈
가 걸린다는 것은 절대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커뮤니티의 특성과 속성을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는 겁니다. 얼마 전 피디수첩에서도 나왔
던 얘기인데 최근 감염률을 봤더니 오히려 성소수자 내에서의 감염률은 낮아졌습니다. 이
성애자들에게 발병률이 더 높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면 성소수자들 커뮤니티 내에
서는 에이즈에 대한 무서움을 알기 때문에 경각심을 가지고 조심히 성관계를 가지기 때문
입니다. 

박진영: 동성애자들은 항상 예방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동식: 하지만 이성애자들은 이 정보 즉 에이즈에 대해서 무지하고 관심이 없습니다.

박진영: 정부에서 교육도 잘 하지 않습니다.

유동식: 교육도 받지를 않고 문제의식조차 없기 때문에 지금 오히려 이성애자들 중심으
로 해서 에이즈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것을 더 문제시해야 됩니다. 에이즈를 막
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과 예방을 위한 캠페인이나 이런 노력들이 시급한 거지, 이게 단
순히 동성애자들만의 문제라고 정죄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지금을 시급한 상
황이라고 봤을 때도 절대 그게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류상태: 아주 상쾌하고 명쾌합니다. 유익한 정보입니다. 희미하고 막연했던 것들이 들으
면서 명확하게 정리되는 그런 느낌이 좀 듭니다. 성소수자로서, 그분들을 돕는 위치에 있
는 분으로서, 우리 사회에 특히 반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박진영: 동성애 반대자의 대다수가 보수기독교인들입니다. 성소수자 커뮤니티 안에서 우
리를 가장 핍박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라고 얘기했을 때 항상 보수기독교 세력인데 사실 
저희들은 난감합니다. 왜냐하면 저희들도 기독교인입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왜 저
렇게 제대로 보지고 못하고 저럴까 마음이 아픈데 저는 그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이 굉장히 왜곡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일단은 성서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깊이 해서 성서를 너무 지엽적으로 문자적으로 볼게 아니라 성서를 전체적으로 보아야합
니다. 
“내 이웃 사랑하기를 내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하나님 말씀에 이루어졌나니 라는 이 말씀
에서 명확하게 성서에 나와 있는 모든 율법은 서로 사랑하라 라고 하는 이 한 말씀에 이루
어졌다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보지 않고 그 사람들이 무시를 하는 것입니다. 그
리고 예수님조차도 “이미 십계명이 있고 구약 계명이 있는데 십계명을 너에게 주노니 서
로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하실 정도로 그 성서 안에 흐르고 있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
랑과 그 생명에 대한 존중 이게 핵심가치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냥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내가 잘 모르기 때문에 반대를 하는 거를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저는 그거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반응
들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내 가치관이 무너질 것에 대한 두려움, 이제까
지 이런 신앙체계와 가치체계 안에서 살아왔는데 뭔가 새로운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
니까 내 체계를 다시 수정해야 되고 새롭게 뭔가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되는데 그 과정에
서 내 내면의 부딪힘이 있는 겁니다. 저는 그게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하고 그
렇다면 오히려 두려움을 용기 있게 직면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나니, 두려움에 형벌이 있음이다. 두
려
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할 자세는 내 안에 있는 그 두려움과 이게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에 가치관을 절대 
수호해야 되고 이럴게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먼저 한번 다가가 보는 거 그게 첫 번째 자
세인거고 사랑으로 다가가서 들여다보고 이게 두려워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된다 라는 것으로 저는 이분들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분들 진짜 전혀 두렵지 않은 분들이세요. 제가 만난 성소수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다들 
두렵지 않은 분들이기 때문에 두려워할게 아니라 마음을 좀 열고 다가가는 것이 필요합니
다. 우리 사회가 너무 소수자 배제적인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경쟁사회 일수
록 어떻게든 약자는 떨어뜨리고 강자만 살아남는 가치가 주류 가치이지만 그 주류 가치
에 반하는 건 사실 기독교 가치입니다. 기독교 가치는 주류의 흐름의 가치관보다 약자들
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게 더 큰 가치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만연한 그런 가치관으
로 사회적 약자를 볼게 아니라 조금 더 다른 더 넓고 깊은 인류애적인 가치로 볼 수 있으
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동식: 성소수자를 혐오하고 정죄하는 분들에게도 레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예 들으
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그냥 싫어.” 라고 고집하시는 분들은 저희가 축제하면 나와서 북
치고 부채춤 추시는 분들입니다. 반면에 기독교 안에서 보니까 왠지 성경 말씀에 금지되
어 있어서 옳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막상 혐오한다고 하니 또 그것은 아닌 것 
같아 약간 고민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민하시는 분들 중에는 또 이
런 분들도 있는데 뭔가 심정적으로 불편해, 동성애가 어려워, 불편하고 껄끄러워, 하지만 
뭔가 기독교적인 가치로 봤을 때 이것을 적극적으로 혐오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갖
는 이 불편하고 껄끄러운 감정과 이게 논리적으로 또는 개념적으로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가치로 봤을 때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은 갈등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대화가 되지 않는 분들하고는 더 이상 얘기를 할 수가 없을 것 같고 이렇게 고민하
고 갈등하고 성소수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는지 본인이 확신을 갖지 못하시는 분
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논리적이고 여러 가지 사회의 정보들 이런 것들을 다 내려놓
고 솔직하게 인간적인 관심을 가져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어
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 저희들은 어떤 존재들인지 옆에서 목소리도 들어
볼 기회를 만들어 보시고 함께 참여도 해보시고 그렇게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목소리들을 조금씩 듣다 보면 본인이 갖고 있는 신앙체계 안에서 아, 동성애자
를 성소수자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이렇게 생각해야겠구나! 라는 각자 나름의 결론을 내
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7월 15일에 시청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데 모든 시
민들에게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축제의 장입니다. 그곳에 나와서 정말로 그냥 언론에
서 굉장히 자극적인 기사와 사진들만 쏟아내는데 그런 것을 넘어서서 우리 성소수자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 축제를 즐기고 누리는지 한번 와서 보시면 저는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
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진영: 저는 성소수자를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먼저 만났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5년 
동
안 살면서 살았던 지역이 샌프란시스코였는데 거기는 공기처럼 성소수자들의 인권이 살
아 숨 쉬는 그런 지역이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 룸메이
트, 학교 친구, 같이 일했던 사람들,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 너무 많이 만나가지고 성소수
자에 대한 저의 첫인상과 인식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이나 비판적인 것을 습득하
기 이전에 이미 이 사람들을 먼저 만난 겁니다. 한국에 아는 동성애자 분이 한 명도 없었
는데 조금씩 알아가면서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분들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매
주 만나고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고 합니다. 지금은 인간에 대한 이해 자체가 변했습니
다. 기존에 내가 이성애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거하고 동성애자들과 성소수자들
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건 너무 다른 겁니다. 저의 인간에 대
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만약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나 사회에
서 이루어진다면 훨씬 삶이 풍성해질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류상태: 아주 적절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차별금지법 문제도 짚어보았으면 합니다. 도
무지 대화가 안 되는 사람들, 그런 분들로부터 나오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언행으로부터 
소수자들을 지키기 위한 그런 법이 차별금지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
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 법이 통과되면 반대의견을 표현하는 것조차 제한될 수 있다
고 합니다. 교회에서 이거 잘못 되었다라고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사회에 비판의 여
지없이 그 표현 그대로 하면 침투해 들어올 것이라는 주장들도 있는데 이 법에 반대의견
을 표현하는 것조차 제한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분들이 염려하는 부분들이 어느 지점
에 있는지 또 그럴 여지가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박진영: ‘반대하는 것을 표현해도 되는가!’ 여기서부터 혐오표현이라는 개념자체가 사람
들
에게 있는지 저는 궁금합니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누군가를 
반대하는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그게 권리인가, 권리로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사람들한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이 상처 
받을지도 모른다는 이 생각보다는 내 생각은 그냥 내 주장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게 나는 이것으로 법적 제재를 받고 싶지 않아, 난 계속해서 
혐오할 거고, 계속 반대할 거고 계속해서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거
야 이런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이런 성찰을 가지고 그런 걱정을 하고 염려를 하는 건지 
저는 궁금합니다. 전혀 그런 성찰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사실 법이라는 거는 저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봅니다. 
만약에 우리 안에 서로에 대한 존중,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굳이 법으로 만들 필요까
지는 있을까요? 그게 없기 때문에 법을 만들자고 하는 건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배려하
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그것을 계속 하고 싶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모습은 이기적이고 반기독교적인 것이고 단지 동성애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거라고 한다면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 소수자들 우리사회의 예를 들면 장애인이나 노동자
나 여성이나 여러 가지 학력이나 이런 것들로 차별을 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들에 대한 인권은 별로 가치가 없다는 건지,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
신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낄지라도 엄연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반대하는 것 자체가 이미 그게 차별이고 혐오라는 것을 먼저 인식할 필요가 있
을 것 같습니다. 차별금지법 자체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서 반대의견을 얘기하는 것
은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이라는 것은 굉장히 복잡하고 예를 들어 형사처벌 
할 것인지 말 것이지 이 과정이 너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에 내가 어떤 발언을 했다고 그
걸로 형사처벌까지 가기 쉽지 않습니다. 이 차별금지법이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기
독교 안에서 퍼져 있는 논란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고 오히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위
해서 더 포장하는 걸로 비춰집니다. 

유동식: 강단에서 목사님이 설교 때 혐오 발언을 하시는 거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
기 때문에 그 부분까지는 차별금지법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지키
려고 하는 최소한은 일터나 학교, 공공기관 이런 공적인 자리, 영역 안에서 벌어지는 차
별, 공개적인 차별을 금지하자는 최소한의 것이지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차 마시면
서 친구들하고 얘기하는데 혐오발언 했다고 해서 갑자기 끌려가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
다. 그리고 이 법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 삶의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존
재근거를 만들어주는 법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법이 통과되지 않는 것은 ‘성소수자
들은 그냥 계속 숨어서 살아라, 사회 저변으로 나오지 말아라, 그리고 우리는 너희를 인정
할 수 없다.’ 라는 걸로 밖에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이 성소수자 법문구안에는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여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들
이 같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성소수자만을 반대한다고 해서 그래서 이 법을 통
과시키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고 생각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비온뒤무
지개재단’ 한채윤 이사가 차별금지법을 왜 기독교가 반대하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역사적
인 과정을 추적하여 글을 썼습니다. 맨 처음 차별금지법 상정이 되었던 게 노무현 정권 말
기쯤이었는데 이때 당시만 해도 최초로 이 법안이 상정 되었을 때 기독교에서 아무런 문
제를 삼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게 문제시 된 것은 노무현 정권이 차별금지법을 
언급한 뒤 법안을 상정함과 동시에 바로 사학법과 연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학법을 
건드리면서 동시에 종교지도자들 또한 세금을 내야 되는 이런 법안들을 만들려고 하자 기
독교가 강하게 반발을 했는데 삭발식도 하면서 강하게 저항을 했고 저항의 수단으로써 그
때부터 이 차별금지법을 공론화 시켰다는 역사적인 특권에 대한 근거들을 한채윤 이사가 
명료하게 풀어서 쓰셨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기독교 단체들이 과
연 도덕적인 물리적인 관점을 가지고 성소수자를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 정말 투철한 종
교적인 신념과 사명감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인가, 저는 그것부터 의심하고 싶고 질문하
고 싶습니다. 
저희가 시청광장에서 퀴어문화축제를 해도 된다고 결정이 나서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서 
남대문경찰서에 줄을 섰습니다. 장소를 대신 점유하려고 하는 반대 측 기독교 단체들이 
있어서 경쟁하기 위해서 줄을 섰습니다. 강하게 대립하던 기독교 단체들 중 하나인 예수
재단의 대표가 오셔서 귓속말로 “사실 우리가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건 동성애자 성소
수자들 때문이 아니고 박원순 시장 때문이다.” 라고 하고 가셨다는 겁니다. 알고는 있었지
만 이것을 입 밖으로 이렇게 말하고 가는 상황들이 너무 어의가 없기도 하고 답답하고 한
심하고 정말 이게 뭐냐 라는 생각이 들어 화가 났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순수한 신
앙을 갖고 계신 많은 기독교인들이 아셔야 되는 게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의 이 주된 
분위기가 무엇 때문에 발생 했는가 저는 이것부터 여러분이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류상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성소수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있는지, 별로 큰 도움
이 없을 것 같은데 실제적인 도움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지, 또 성소수자의 완전한 인권회
복을 위해서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하시죠. 

박진영: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성소수자의 기본권으로 성소수자는 사회구성원으
로서의 기본권을 지금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도 시민입니다. 다들 사회에 일
원으로서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우리나라 국민으로서 의무인 국방의 의무를 하고 다 하
는데 권리는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성소수자들입니다. 이제 권리에서 배제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 차별금지법이 마련됨임으로써 사회적 분위기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열리고 더 배려하고 조심하게 되면 그게 더 빨리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
권회복을 위해서는 저는 동성혼 문제가 합법화 되는 거하고 그 다음에 군형법 92조의 6
이 
빨리 폐지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군형법 문제는 정말 상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
리나라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 입법이 여러 번 되었는데 매번 못했습니다. 이번에 또 발
의가 되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군대에서 저렇게 차별 받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유동식: 차별금지법이 갑자기 통과되지는 않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희가 
이 법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이 발전 되어 가고 개선되어 가
는 단계로써 굉장히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
도 중요한 것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편견을 지우는 거 인식 자체를 바꿔 나갔을 때 이 법
도 온전히 효력을 발휘할 수 있고 우리가 온전히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만
들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무조건적으로 혐오하고 반대만 
하지 마시고 최소한의 정보라도 알려고도 노력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알
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박진영: 오해와 편견을 걷어내는 게 저는 가장 시급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는 정부차원이든 교육부차원이든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학교에서 차별
받는 성소수자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게 보호해야 하고 부모들도 자녀가 성소수자일 때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이를 무조건 억누르고 이성애자로 살아 이렇게 할 게 아
니라 그것을 가르쳐주는 등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이 아이가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건전하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부모가 그것을 알아야 되는데 부모들이 지
식이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 겁니다. 정부차원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올바
른 인식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유동식: 최근에 저희들 내부에서 “세상에 성소수자라는 것은 없다. 성과 관련된 성향, 취
향, 또는 정체성은 다양성으로 세분화 되어 있는 것이지, 이것이 소수자라고 묶어낼 수 있
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적 지향성과 성적 정체성에 따라서 굉장히 세분화 될 수 있
는 영역이 바로 이 성의 영역이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성소수자라고 얘기하는 것은 어
찌 보면 성다수자 라고 생각하는 영역에 속해있는 자들에게도 뭔가 비극 같은 일일 수 있
다.” 라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왜 이 이야기가 나왔냐면 제가 한번은 대학원 친구들하고 
같이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이성애자 남자 후배가 저한테 자기는 형이 되게 부럽다, 왜
냐하면 형은 스스로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달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고 그거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갖고 있지 않냐 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자기는 사회에서 이성애자로서 주입
된 교육을 받아왔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도 이성애자인가보다 라며 살고 있고 자신의 욕망
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속 깊은 곳의 욕망을 탐험할 기회가 없었다, 알아가도록 노
력해 볼 기회조차 없었다, 그래서 지금 자기 스스로도 나는 이성애자라고 확신하고 있지
만 한편으로는 실은 내가 게이이면 어쩌지, 게이일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가 불편함을 겪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그럼
에도 자신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는 형이 부럽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사회에서 성과 관련해서는 너무나 보수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
적인 욕망을 갖는 거에 대해서 굉장히 강하게 터부시 되어왔던 사회고 그리고 우리 모두
가 가지고 있는 성적인 다양성을 존중하고 탐험할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지 않
았던 사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성소수자를 인정하고 그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우리
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면 이거는 마찬가지로 이성애자들에게도 다양성이 열
리는 사회, 존중되는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류상태: “법제화라는 법의 보장책도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오늘 대화를 통해서 저 역시 가지고 있던 편견과 오
해를 푸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깨끗이 거쳐진 느낌이고 어느 때보다 많이 배웠습니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두려울 것도 없고 겁낼 것도 없고 문제될 것도 없는데 그냥 있는 그대
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이런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부족한 부분이지 않
나 싶습니다. 자기와 관계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해와 관심의 이해의 폭을 넓혀 우리 사
회의 다양한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삶의 폭도 넓어질 거라 저는 생각합니
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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